<일본재조명>3.흔들리는 종신고용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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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컴퓨터 메이커 후지쓰(富士通)는 지난 4월부터 7천명의 관리직 전원과 반장급 이상 중견 생산직 1만명중 6천명을 대상으로미국식 연봉제를 도입했다.혼다(本田)는 지난 6월부터 부과장급관리직에 직급별 임기제를 도입,종신고용과 연공 서열 위주의 인사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키로 했다.임기안에 승진을 못할 경우 관리직은 한직으로 밀려나면서 급료도 연간 최대 30%까지 깎이게 된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 3월「轉進연금」제를 도입했다.전진연금은 45세부터 58세에 이르는 중고년층이 명예퇴직할 경우 기존 퇴직금에다 93년도 연간 급여의 절반을 매년 연금형태로 정년(60세)까지 지급하는 제도다.
아사히는 종신고용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98년에는 50대 사원이 전직원의 41%를 차지,전체 인건비의 절반이상이 이 세대에 집중되는등 직원연령구조상 큰 문제를 안고 있어 고육지책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아사히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대동소이하게 안고 있는 문제다.감원으로 조직을 가볍게 하려는 움직임은 92년부터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기업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 종신고용제가 흔들리고 있는것이다.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종신고용제와 나이가 들면 급료도 올려주는 연공서열제는 2차대전前 숙련공 확보를 위해 도입되기 시작했다.
미쓰비시(三菱).나가사키(長崎)조선소와 야하타(八幡)제철소가숙련공 확보를 위해 양성공제도와 훈련소를 발족시킨 것이 종신고용제의 시작이다.그러나 이 제도가 일본에 정착된 것은 2차대전後다. 고미야 류타로(小宮降太郎)前東京大교수는『50년대의 급진적 노동운동을 극복하기 위해 경영자와 종업원집단이 하나가 돼 종업원 전원의 공동체로서 기업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었다.
또 서구의 신기술을 도입,일본에 맞도록 소화하고 서구기 업들과경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기업외 노동시장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기업내부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50년대부터 종신고용제도로 경영효율을 올리게되자 60년대부터 중견기업이,70년대 후반부터는 중소기업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를 채택하게 돼 일본기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자리잡았다』고 밝혔다.
종신고용제도는 직원들이 회사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회사에 강한 충성심을 갖게 함으로써 휴가도 반납하고 일벌레처럼 일만 하게 하는 장점을 안고 있다.또 이직률이 낮아 기술축적이 가능하고 서구수준에 훨씬 뒤지는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를 회사가 보충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일본이 戰後 가장 긴 불황에 시달리면서도 실업률이 3%를 넘지않는 것은 종신고용제 덕분이다.그대신 회사는 사내 실업이라는형태로 현재 2백여만명이나 되는 필요없는 인원을 안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는『입사후 20년까지 일본은 일한만큼 보수를 받지 못한다.그러나 20년후부터는 일한 이상의 급여가 나온다.즉 젊을때 종업원에게 진 빚을나중에 기업이 갚는 셈』이라고 종신고용과 연공서 열제를 풀이했다.종업원과 회사가 상부상조하며 품앗이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엔高,무역흑자에 따른 시장개방등으로 지금까지의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도는 이제 기업에 큰 짐이 되고 있다.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국제화와 개방화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용 구조를 조정할필요가 생겼다.
각 회사 인사담당자들도 종신고용제도가 무너지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 노무행정연구소가 상장기업 인사과장 2백15명을 대상으로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1.6%가「가까운 장래 종신고용제도가 무너진다」고 응답했으며,5.6%는 이미 붕괴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를 합치면 종신고용붕괴파는 47.2%에 이른다.일본적인고용제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東京=李錫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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