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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가다>4.鐵原 옛 노동당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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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탄강이 북북동에서 남남서로 중앙을 관통하는 철원지역은 휴전선 지역중「화려했던 과거」와「우울한 현대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강을 끼고 북한의 평강고원까지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들판은 지평선조차 간간이 보일 정도로 천혜의 평야지대.궁예가 왜 이곳에 후고구려의 도읍(904년)을 정했는지,국군과 인민군.중공군이 그 치열한 백마고지 전투(1952년)를 왜 벌 여야 했는지한눈에 알수 있을 정도다.
취재팀은 이미 유명해진「북괴 노동당사」「남침용 제2땅굴」「금강산 전철」등을 돌아본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도사업국의 흔적을 찾았다.1936년 일제가 만들었다는 수도사업국은 동송읍 율리리 소이산 기슭에 폐허처럼 남아있었다.
靑星부대 徐基洙중령이 경비초소라고 소개했던 높이4m,직경 2m가량의 속이 비어있는 원통형 건물이 알고 보니 저수탱크물에 소독약을 뿌리던 염소투입조였다.또 다른 투입조 1동과 관리사무소 1동,저수탱크1개는 흙더미와 사람키보다 높이 자란 달맞이꽃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았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김의주씨(43.동송읍화지리)는『물탱크 속은 넓고 시원해서 어렸을 때 개구쟁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고 회상했다.
철원군 金明培공보실장은『물탱크는 반지하 약 30평 넓이로 높이 3m쯤인 장방형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고 소개하고『당시철원읍내 주민 2천5백여명에게 하루 1천5백t의 물을 공급했던강원도 유일의 상수도 시설이었다』고 말했다.
郡誌는 전쟁 당시 북한군이 철원군 노동당사와 내무서에서 조사하던 반공인사 3백여명을 이 물탱크에 감금했다가 도주하면서 이들을 집단총살.매장했다고 적고 있다.
분단전까지 철원은 경기.강원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역이자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도의 가장 큰 중간역이었다.또 김화~금성~단발령~내금강 장안사로 이어지는 1백16.6㎞ 금강산 전철의 출발점이기도 했다.그러나 철원의 이같은 풍요 는 전쟁의 상처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고 분단이 지속되면서 수십년간그 번영이 회복되지 못한채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1937년 당시 철원읍(지금은 舊철원)의 인구가 1만9천여명이었는데 지금 철원군에서 그중 크다는 동송읍 인구가 1만8천명이니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일제시대 보다 후퇴한 이유를 단순히 이농현상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으리라.
수도사업국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수백m 내려오면 야트막한 언덕에 불에 그을린듯 거무스름한 시멘트 담벼락 네 무더기만 앙상하게 남은 기독교 대한감리회 철원제일교회 흔적이 눈을 끈다.담장은 시멘트 겉껍질마저 군데군데 벗겨지는 바람에 화 암들이 삐죽빼죽 내비쳐 마치 내몸의 흉터를 보는듯 마음이 무겁다.
1905년 장로교회로 세워져 곧 이은 선교지역 분할 때 감리교회로 바뀐 이 교회는 일제시대 강원 북부지역의 선교.교육.봉사의 중심지로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벌어지자 강원도에서 가장 빨리 2일부터 이를 따르는 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독교 청년.학생.민족주의자,천도교 인사들의 인적 연결망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중부지방의 웅장했던 석조聖殿이 전쟁의 포화를 겪으며「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잘 알려진 철원군 노동당사는 높이 10m쯤 되는 3층 건물인데 지붕과 2~3층 사이의 바닥이 폭격으로 날아가 버리고 곳곳에 진녹색 이끼가 흉하게 끼어있다.
민통선 지역의 흔적들을 뒤로하고 북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털털 거리고 가면 바로 정면에 4m높이의 필승장벽이 나타난다.
이 장벽은 78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해 89년에 완성됐는데 남방한계선을 따라 약 30㎞ 길이로 퍼져있다고 한다.
대전차방어용이지만 90년 金日成이 신년사에서『남조선 인민의 월북을 막기 위한 분단고착용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문제를 삼으면서 대화거부의 빌미로 삼았던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위에 세워진 월정리 전망대에 오르니 비무장지대 북서쪽에 중공군 3만명,아군 1만5천명이 죽었다는「피의 능선」이 눈앞에보이고 金日成이 3일동안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는「김일성 고지」가 저멀리 솟아 있다.
남방한계선 철책 1백여m앞에 놓인 공룡뼈 같은 형상의 녹슨 고철과 주변에 흐트러진 쇳덩어리들은 달리던 기차가 폭격으로 멈추면서 그려낸 참혹한 분단풍경으로 보였다.
글 :全榮基기자 사진:이지누(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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