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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욕설 … 부끄러운 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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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이 날아들었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지고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 욕을 하기도 했다. 흡사 사회 문제로 몰려온 시위대의 모습을 연상시켰지만 골프 대회가 열린 골프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21일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가 열린 경북 경주의 마우나오션 골프장. 500여 명의 갤러리가 클럽하우스 앞으로 몰려들어 경기 속개를 요구하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들은 "너희들이 경기하러 왔지, 사인하러 왔어. 당장 나와"라며 고함을 질러댔고, 클럽하우스 경비를 맡은 경호업체 직원들에게 물병을 던졌다. 클럽하우스 진입을 시도하며 경호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LPGA 대회인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은 갤러리의 난동 속에 3라운드를 소화하지 못하고 2라운드 결과로 대회를 마쳤다. 표면적 이유는 강풍을 동반한 악천후 때문이었지만 갤러리의 난폭한 행동도 한몫했다.

이날 사태는 LPGA 측이 오전 9시15분쯤 경기를 중단시킨 데서 비롯됐다. 초속 6.5m의 강풍으로 그린 위에 있던 공이 10m 이상 흘러내리자 일부 선수가 "더 이상 경기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호소했고, 주최 측과 LPGA 경기위원회는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이후 LPGA 측은 3시간여 동안 속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선수들과 논의를 거듭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간간이 불자 선수들도 "계속하자"는 측과 "중단하자"는 측으로 나뉘어 찬반 양론을 벌였다.

클럽하우스 앞에 모여든 갤러리가 소동을 벌이고 있다. [경주=정제원 기자]


그 사이 클럽하우스 앞에 몰려든 갤러리는 성난 시위대로 돌변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왜 경기를 안 하는 거야. 책임자 당장 나오라고 해."

주최 측은 입장료(5만원)를 환불해 주겠다며 질서 유지를 당부했지만 일부 갤러리는 "입장권 환불은 물론 교통비까지 내놓으라"며 추태를 부렸다. "영차, 영차"를 외치던 갤러리 중 몇 명은 팬 서비스를 위해 사인을 해 주러 클럽하우스 밖으로 나온 외국 선수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쳐드는 상식 이하의 짓을 하기도 했다.

마리아 요르트(스웨덴)와 강수연 등은 사인을 해 주기 위해 나왔다가 봉변만 당했다.

'바비 인형'으로 불리는 미녀 스타 내털리 걸비스(미국)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너무 무서워서 사인을 못 하겠다"며 클럽하우스 2층으로 대피했고, 일부는 아예 반대편 문을 통해 골프장을 빠져나갔다. 일부 외국 선수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갤러리의 항의 장면을 담기도 했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라 불릴 정도로 선수와 갤러리에게 매너와 절제를 요구한다. 선수들이 샷을 할 때 갤러리는 조용히 해야 하고,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리바 갤러웨이 LPGA 부회장은 "처음에는 경기를 재개하려고 했으나 경기위원.선수.스폰서들과 상의한 결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갤러리가 화가 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미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고 말했다. 매너의 스포츠인 골프에서 발생한 최악의 갤러리 추태였다.

정제원 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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