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과 산간에서 새로운품종으로 생산.수출품으로 각광받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대구사과가 경북청송에서 과수혁명을 일으켰다.』 70여년동안「사과의 왕자」로 군림해온 대구사과가 그 명성을 잃은지 20년만에 텃밭이 아닌 외딴 산간지역에서 새로운 품종개체로 대를이어수익성 높은 명산물을 생산,수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청송군부동면지동 마평사과수출협업단지(속칭 마들).
이곳 협업단지의 경작농민 32가구는 모두가 대구에서 이주해온대구사과 경작농민의 2,3세들.
대구사과는 1900년대초부터 대구근교 속칭 동촌.반야월(현 대구시동구안심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사과의 대명사처럼 널리알려졌었다.그러나 70년대 들어 이곳에 연료단지가 들어서고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50여만평의 사과경작지가 공장용지로 편입되거나 팔려나간데다 남아 있던 과수원마저 탄가루 공해와 악성부란병이 겹쳐 생산성은 물론 품질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피해 사과농사를 천직으로 삼던 경작농민들이 과수원을 공장용지나 택지로 처분하고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나선 곳이 지금의청송땅 마들.
72년봄 20가구 경작농민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한데 이어12가구가 더 이주해 왔으나 경작지라곤 황폐한 자갈투성이 하천부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곳 하천부지는 해발 2백50m의 산간지대에 위치해 사과 결실기인 한여름 낮과 밤의 기온차가 20도나 되는데다 주변에 마사토가 무진장으로 깔려 있어 사과주산지로서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주농민들은 청송군으로부터 하천부지 30만평을 불하받아 자갈을 들어낸 바닥에 마사토를 높이 30㎝로 복토하고 퇴비를 주는등 꼬박 2년간에 걸쳐 기름진 옥토로 일궈냈다.
이들은 처음부터 화학비료를 외면하고 묘목이 다 자랄 때까지 짧게는 5년,길게는 10년간 퇴비를 이용한 유기농법만 고집했다. 그 결과 84년부터 본격 수확을 시작한 이곳 사과는 같은 해에 열린 전국사과품평회에서 단연 최우수품으로「사과의 왕자」임을 인정받은 뒤 수확량 전량을 대만으로 수출하게 됐으며 이후 10년동안 줄곧 왕자타이틀을 놓치지 않아 전국에서 이곳의 영농기법을 익히기 위해 연간 6백여명의 경작자들이 견학을 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연간 1천8백t으로 이중 여름사과 아오리가 30%,겨울사과 후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대종을 이루는 후지사과의 경우 껍질이 두껍고 속이 단단한데다색깔이 곱고 당분함유량이 보통사과보다 평균 1.5배나 많아 맛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출하하는 사과는 한.중수교 이전까지만 해도 후지사과의 종주국인 일본을 제치고 전량 대만으로 수출됐으나 지난해부터서울가락동 농산물시장에 내놓기 바쁘게 경매에 부쳐져 다른지역의사과보다 평균 20%나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 다.
협업단지회장 許珍權씨(43)는『대구 경작자들이 이곳에 이주해와 사과농사를 짓고 있으나 출하할때「대구사과」상표를 붙이면 공해에 찌든 상품으로 보고 아예 사가지 않아「마평사과」상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며 대구사과의 명성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靑松〓李勇雨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