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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항공 수요 고공비행 "비행기 없어서 못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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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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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 항공사 구매담당 임원은 최근 보잉에 중형 항공기를 구입하려고 문의했다가 뒤로 자빠질 뻔했다. 지금 주문해도 6년을 기다려야 인도받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열차로 사흘씩 여행하던 중국인들이 경제 성장으로 항공기의 편리함을 알면서 중국의 항공기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도의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여객·화물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항공기 제작 회사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4년치 이상 주문량이 밀려 있는 한국 조선업계와 비슷하다.

‘서울 에어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보잉의 랜디 틴세스 상용기담당 부사장은 “지금 항공기를 주문하면 기종을 불문하고 4∼6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새로 나온 787 드림라이너의 경우 2013년까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전 세계 상용기 양대 제작사인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에 따르면 1987년 이후 올해까지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객은 2.5배 정도 늘어났다. 운항 편수와 직항노선 수도 각각 2.2배와 2배 증가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주춤했던 세계 항공 수요와 항공기 개발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빠른 경제 성장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에어버스의 모회사인 EADS 크리스티앙 뒤엥 인터내셔널 사장은 18일 “에어버스가 벌어들이는 전체 수입 가운데 아태지역의 비중이 2002년 7%에서 지난해 20%까지 올랐다”며 “2014년 30% 진입을 예상했으나 2011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잉의 틴세스 부사장도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일대의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이 일대로 향하는 교통량과 이동 인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 일대 항공사들이 2026년까지 1390대의 상용제트기를 발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두 회사 모두 동북아 지역을 생산거점으로 삼기 위해 안간힘이다. 보잉은 중국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합작벤처 등을 통한 ‘텃밭 다지기’에 나섰다. 보잉은 가장 많은 부품을 중국 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에어버스도 프랑스 툴루즈와 독일 함부르크 공장에 이어 A320의 최종 조립라인을 중국에 세우기로 최근 결정했다. 에어버스차이나의 로렌스 바론 사장은 “중국에 들어온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현재 항공기 시장의 36%를 차지하고 있고, 2013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래지 않아 동북아 지역에서 거대한 자가용 비행기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성기정 비행제어팀장은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가 가장 많은 지역이 한·중·일 삼각벨트”라며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는 비행기가 제작되고 이착륙이 보다 자유로운 활주로가 갖춰지면, 동북아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형제트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잉과 에어버스=치열하게 경쟁하는 항공 우주 분야의 양대 산맥.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보잉은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항공우주 업체다. 지난해 매출 615억 달러(약 56조원), 순이익은 22억 달러(약 2조원)였다. 프랑스 툴루즈에 본사를 둔 유럽 4개국 연합체인 에어버스는 항공기 인도 기준으로 세계 1위다. 창사 이후 230여개 업체에 7700여 대(8월 현재)의 항공기를 팔았다.

기동헬기 등 잇따라 수출 10인승 소형제트기 제작도

틈새 뚫는 한국항공우주산업

국내 유일의 항공기 조립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틈새시장을 뚫고 있다. 올 8월 터키에 5억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한 기본훈련기 KT-1은 선진국 항공 군수업체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틈새 기종’이었다. 다음달 아랍에미리트(UAE)로 수출 여부가 결정나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도 유럽이 차세대 훈련기 개발을 포기하면서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얻었다.

이일우 KAI 선행연구팀장은 “대형 군수업체에 비해 기술력은 떨어지지만 틈새를 찾으면 얼마든지 수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국형 기동헬기(KUH) 개발사업도 기본설계를 끝내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KAI 정해주 사장은 18일 유럽의 헬기 제조사이자 기술제휴사인 유로콥터의 버틀링 사장과 서울에어쇼 행사장에서 KUH 수출을 위한 합작 벤처기업 설립에 합의했다. 2014년 이후 300여 대의 헬기 수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KAI는 훈련기 수출에 힘입어 올 매출 1조원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KAI는 2010년 2조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이스라엘 항공기 회사와 손잡고 역시 ‘틈새 상품’인 10인승 소형제트기 개발에 나섰다.

KAI 관계자는 “앞으로 남북 간의 교류가 자유로워지고,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비즈니스제트기·에어택시 등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우·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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