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73.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다꾸 말이 천호동 쪽을 일단 한번 훑어보래.다꾸는 또 자기대로 알아보고 있다는 거야.
건영의 전화였다.
나는 수화기를 입에 바짝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다른 식구들이 들어서 좋을 건 없는 일이었다.
-천호동? 그렇게 막연해가지고 어떻게 찾으라는 거지? -그 동네 가서 알아보면 뻔하지 뭘 그래.어린애들이 나오는 유명한 골목이 있대.다꾸 말이 강남 쪽의 괜찮은 살롱에는 안나오는 게거의 분명하다는 거야.
-강남 쪽은 아닐 거라구.그쪽 동네라면 걔네 엄마가 꽉 잡고있거든. 써니엄마가 만든 전단을 다꾸라는 친구에게 갖다준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다.경찰에서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지만 별 성과는 없다고,써니엄마가 전단 꾸러미를 내주면서 그랬었다.
맨 위에「사람을 찾습니다」라고 인쇄된 전단에서는 써니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그 웃음은,비오는 날 성당 뜰에서 내가 키스하자고 그랬을 때,「우리 참아」라면서 짓던 바로 그런 웃음이었다.전단에 인쇄된 써니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나는 그 만 찡해서 눈물을 보일 뻔하였다.거기에 예쁜 얼굴이 무슨 소용이람….
실종 일시:1992년 7월 5일.용모:162㎝,마른 편,예쁜얼굴,큰눈에 쌍꺼풀,뺨에 약간 주근깨가 있음.찾아주시는 분에게는 후사하겠음….
상원이와 내가 천호동을 헤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영석이는 가족들과 함께 푸케트인가에 가고 없었다.인간답게 사는 놈이야 라고 상원이와 나는 푸케트로 떠나버린 영석이를 씹었다.영석이 아버지 말로는,고2 여름방학이 가족과 함께 하 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그런다는 거였다.
하여간 상원이와 나는 그날 작정을 하고 나온 길이었다.나는 형의 양복을 빌려 입고 넥타이까지 맨 차림이었다.형 방의 구석에 내던져진 양복을 내가 하루만 입자고 그랬더니,형은,그래 어차피 세탁소에 보낼 거니까 라면서 웃었다.형은 같 은 말이라도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텍사스 골목의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는 술집 가운데에서 비교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집에 들어섰다.주모가 안내해주는 대로 두세평쯤 되는 방에 들어서서 앉으니까 안주와 맥주가 들어왔다.이게 기본 상이라는 건가 보았 다.8시께였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조용했다.
『우리 도련님들,연애도 하고 갈 거지?』 보라색 한복을 입은주모가 들어와서 두당 기본요금 3만5천원씩 7만원을 챙겨 넣고나서,다짜고짜 말했다.마흔 살은 채 안됐을 여자였다.
『그건…얼만데요?…한 명만이요.』 상원이가 그랬다.우리는 돈이 문제였다.
『잘해줄게 걱정 마.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뭐.어린애? 아니면기술이 좋은 선생님? 우리집엔 말이야,기능올림픽에 나갔다 온 선수도 있다우.』 머리를 틀어올린 주모가 말해놓고 혼자 킬킬거렸다.아이구 이뻐 죽겠어 하는 얼굴이었다.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원이가 용감하게 말했다.
『열일곱 살도 있어요? 그리구 이 새낀…주근깨 있는 앨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영계도 아니구 중닭이네.어디 보자,주근깨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