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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종말>8.마르코스-국외 탈출 죽음앞서도 권력집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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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권력을 잃은 독재자는 어떤 모습일까.
정도의 差는 있을지 모르나 대개는 마구잡이로 재산을 긁어 모았던「더러운 손」을 자기변명을 위해 비비는 비굴한 태도,한편으로 달콤했던 권력에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추한 모습일 것이다. 66년부터 20년간 필리핀을 독재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86년2월 분노하는 국민들의 反정부시위에 밀려 국외탈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명예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코라손 정권에 참가해 권력배분을 받을 수는 없겠는가』라며 권력에의 집착을 보였다. 물러나기 하루전 4번째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던 마르코스는美정부와 필리핀軍部의 퇴진요구가 거센 가운데,시위군중들이 대통령宮으로 몰려들어 자신과 가족들을 죽일 것을 우려했으며 심지어필리핀 해역에 정박중인 美해군함정이 新정부군과 합 세해 자신을공격할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다가 당뇨병.낭창등으로 인해 침실에 산소탱크등 의료장비를 갖춰놓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극도의 쇠약상태에 빠져있었다. 이같은 상태는 하와이로 국외탈출한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마르코스는 이따금 기자회견을 갖고『합법적인 대통령은 바로나』라고 큰소리치며『아키노 정권이 무너지면 공산게릴라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고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또 필리핀 귀국을 조건으로 재산을 정부에 헌납하겠다며 헌납규모를 최고 1백억달러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紙는「마르코스帝國,금.석유.토지,그리고 현금」이라는기사에서 도피재산이 5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재산도 퇴진한 독재자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집권시절 세워졌던 銅像에 도깨비뿔이 박히는가 하면 화장실에서쓰는 종이에 夫婦얼굴이 그려지는 수모를 받아야 했다.
1백억달러를 커미션 또는 공금횡령으로 모았다는 사실로 기네스북은 그를「세계최대의 도둑」으로 기록했다.
자신이 망명지로 희망했던 싱가포르.스페인등도 입국을 사절해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美國도 88년10월 연방대배심이 필리핀 정부 돈을 빼돌린 혐의로 마르코스를 기소,더 이상 안전지대가 되지 못했다.
마르코스는 권좌에서 쫓겨난지 4년만인 89년5월 신장결석및 심장.호흡기 질환등으로 시달리다 하와이의 조그만 병원에서「오욕에 물든 일생」을 마감했다.죽음을 맞는 그의 곁에는 독재정권의충실한 파트너였던 부인 이멜다와 측근 몇이 있었 을 뿐이다.
그는 죽은지 4년만인 지난 해에야 6촌지간인 피델 라모스대통령의 배려로 고향땅에 가까스로 묻혔다.
마르코스가 처음부터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는 지난 65년 제6대 대통령선거戰 당시 집권자였던 마카파갈후보를 부패와 무능.족벌정치로 몰아세워 48세의 젊은 나이로大權을 거머쥐었다.
필리핀대학 법학부를 수석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훈장 27개를 받은 전쟁영웅의 후광을 업은 변호사로 최연소 하원의원등출세가도를 달렸던 그는 한 때「아시아의 미래지도자」로 손꼽히기도 했던 유망주였다.
문제는 3選 고지를 넘어서려는 그의 집권욕이었다.
그는 정권연장차원에서 지난 72년 계엄령을 선포한뒤 수많은 政敵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致富를 위해 국민들을 궁핍속으로 빠뜨렸다.그는 계엄령선포후 8년4개월간 7만여명의 반대세력을 투옥하는 무자비한 정치탄압을 자행했고 부인인 이멜다 를 마닐라시장.거주환경부장관에 기용하는등 족벌정치를 일삼았다.
국외탈출뒤 발견된 이멜다의 구두 3천여켤레는 독재정권의 부패와 호화생활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마르코스의 독재가 필리핀국민들을 분노시킨 도화선은 지난 83년 심복이었던 파비안 베르참모총장(마르코스의 사촌동생)에 의해결행된 아키노 베니그노前상원의원의 암살사건이었다.
게다가 괜찮았던 필리핀 경제는 마르코스 집권기간동안 수렁속에빠져들어 국민저항을 더욱 부추겼다.
***70년代 경제 후퇴 마르코스의 독재가 공고해졌던 70년대 중반이후 필리핀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물가는 매년 두자리수로 뛰어올랐고 급기야 국제금융기관들로부터 대외지불능력까지 의심받는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필리핀국민에게 힘겨운 멍에로 남아 있다. 한 때 아시아에서 日本 다음가는 경제부국이었던 필리핀은 현재 인구 6천4백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8백달러선.실업률 10%안팎의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李陽壽기자〉 〈글싣는 순서〉 ①요시프 스탈린 (소련) ②니콜리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③모하메드 팔레비 (이란) ④아돌프 히틀러 (독일) ⑤이디 아민 (우간다) ⑥프랑수아 뒤발리에 (아이티) ⑦안토니우 살라자르 (포르투갈) 8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⑨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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