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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처우, 학벌주의 심한 이공계 인터넷으로 외국大 직접 ‘노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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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연세대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강형우(36)씨는 2003년 9월 미국 미주리주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교수로 임용되기 전 이력서와 연구 업적, 수상 경력 등의 자료를 외국의 학회나 연구소, 대학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랬더니 미주리대에서 연락이 와 한 시간가량 화상 인터뷰를 했고, 여기에서 반응이 좋아 미국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합격했다. 강 교수는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데도 당당하게 자신을 홍보해 미국 교수가 된 것이다.

2003년 캐나다 퀸스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된 김일민 박사도 연구 업적 등의 자료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스탠퍼드대, 퀸스대 등 미국과 캐나다 명문대 홈페이지에 올려 임용됐다.

토종 박사들의 외국행에는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인터넷의 힘이 바탕이 됐다. 하지
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 이는 국내 대학이나 연구소의 논문 수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과학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2만2750편으로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2005년 12위에서 한 단계 상승했다. 2003, 2004년에는 13위였다. 특히 2005년 과기부 조사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인 네이처·사이언스·셀에 발표한 논문은 1994~97년 7편에서 98~2001년 41편, 2002~2005년 67건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실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국내 교육의 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영어 수업이 일반화됐고 학회 참석, 자료 교환, 교환 연구 등의 해외 교류가 급증했다. KAIST 기계공학과 이정권 교수는 “우리 연구실은 박사과정 학생들을 6개월동안 외국 유명 교수에게 보낸다. 거기서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실력이 는다. 또 외국 학술대회에 갈 때 박사과정 학생들을 데려가 외국 학자들과 인맥을 쌓게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실험실 수준이 향상된 점도 큰 힘이 됐다. 포항공대 화학과 정성기 교수는 “KAIST나 포항공대, 서울대의 유명 실험실은 세계 톱5, 톱10에 들지는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외국 대학에 유학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공계에 대한 박한 처우, 학벌주의가 토종 박사들을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국내에서 이공계 박사를 따더라도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상위권 대학은 교수 자리가 나지 않는 데다 외국 박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뿌리 깊은 연줄도 가로막는다. 외국 대학은 실력만 있으면 국적이나 출신 학교를 따지지 않는다. 충남대 약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유영제(36)씨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 47편을 발표해 세계인명사전 ‘마퀴스 후즈후’에 등재되고 미국 국방부에서 우수연구자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출신 학교의 벽을 넘지 못해 국내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 미국으로 눈을 돌려 2006년 사우스다코타주립대 생화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외국 대학에 임용되니까 그제야 국내 대학들이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뉴욕대에서 싱가포르 국립대로 스카우트된 장영태 교수는 2000년 뉴욕대에 임용될 때 국내 대학 두 군데에도 지원했으나 임용되지 않았다. 뉴욕대 교수가 되니까 국내 명문대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잇따랐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한 서울대 홍성욱(과학사) 교수는 “국내 연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공계뿐만 아니라 국제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역사·철학 분야에서도 해외 진출자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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