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프로,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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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5면

“그러니까 정준하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엄마.” “음… ‘무한도전’에 나와서 술집 한다는 이야기했었잖니. 근데 그 술집에 여자 종업원을 고용했대.” “여자 종업원이 뭐 하는데?” “음, 옆에 앉아서 술도 따라주고 노래도 하고….” “그게 나쁜 거야?” “그게, 꼭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원하면 같이 나가서… 아휴, 나도 안 가봐서 잘 몰라!”

이윤정의 TV 뒤집기

나는 TV를 보면서 아들이랑 같이 킬킬대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열린 마음의 엄마이자, 오락프로그램에다 대고 ‘비교육적이네, 뭐네’ 운운하지 않는 쿨한 눈길의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어차피 웃자고 보는 오락프로에서 ‘교육’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또 도덕의 잣대로 오락프로를 비평하기는 참 쉬운 일이지만 그러다 보면 새 세대의 취향에 맞춰 새롭게 개발된 나름의 웃음코드를 도매금으로 넘겨버리기 십상 아닌가.

그런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더라는 얘기다. 그 오락프로들의 첨단의 트렌드에서, 혹은 오락프로를 만드는 제작진들의 무책임한 자세에서 나는 드디어 자식 ‘교육’을 위해 오락프로 시청을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변해감을 느낀다.

박명수나 조혜련 같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이건 막 해도 되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강요해도 되는 걸까? ‘동안클럽’에서 중국 여자 MC에게 호감이 가는 순위 중 박명수가 상위로 꼽히자 무슨 이상한 일이라도 일어난 듯 비아냥대는 자막이 나오다가 여자가 순위를 내리자 ‘제자리’를 찾아갔다며 안심한다.

‘여걸파이브’에서 파트너 남자 모델을 고르는 조혜련이 남자 곁으로 다가가자 무조건 ‘상대방은 싫어할 듯’이란다. 조금 만만한 이미지로 나오면 그걸로 쾅쾅 낙인찍어 버리고 무시해도 괜찮다는 듯한 방송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자기보다 조금 못해 보이는 아이들을 못난이로 낙인찍고 ‘왕따’시키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점점 높아만 가는 막말도 마찬가지. 사람들한테 대놓고 ‘돼지’ ‘뚱보’라고 하는 정도야 이젠 약과고, “야, 너, 자식”이란 말은 지적하기조차 민망하다. 좀 있으면 ‘새끼’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가능할 정도.

‘라디오스타’에서 김국진의 멱살잡이도 보기 참 흉했지만 더 우려되는 건 김구라식 유머. 인터넷 방송에서 명성을 높이던 그의 독설이 토크쇼의 우아함의 정형을 깬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독설’은 신해철의 독설처럼 기존의 권위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 혹은 이름 가지고 놀려먹는 거다.

사람의 약한 곳,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건드려 두 손 들게 하는 건 손쉽고 상상력도 없고 비겁하기에 통쾌함보다는 찝찝함만 남긴다. 인터넷 ‘초딩 악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한 유머를 보고 아이들이 친구의 외모를 놀려대며 유머라고 오해할까 봐 두렵다. 올해 오락프로에 가장 많이 출연하며 아이들에게 영향력이 큰 김구라씨, 아들 동현이에게 스스로의 유머를 자신있게 보여주시는지 궁금하다.

못된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가는 며느리처럼, 나도 막말 한번 해보련다. “니들 아예 정모씨 가게에서 폭탄주 돌려가면서 방송해. 여자 연예인들 씹어가면서 말이야, 시청자? 금방 적응할걸.”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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