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한국 외교부 개혁모임'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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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랜 친구인 한국의 한 지일파 학자에게서 최근 "한국에도 '외교부를 개혁하는 모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외무성을 바꾸는 모임'은 외무성의 기밀비 유용사건, 다나카 마키코 외상 시절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 스즈키 무네오의 외무성 인사 개입사건, 국제회의에서 비정부기구(NGO)를 배제하는 사건 등 잇따른 스캔들이 불거져 나온 뒤 가와구치 요리코 외상이 외무성의 의식 및 인식.조직개혁을 위해 만든 모임이다. 나도 그 모임의 일원으로 1년반 동안 일하면서 ▶전체 대사 20% 민간인으로 충원▶영사국 신설 등 1백60개 항목의 개혁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외무성은 현재 이런 제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모임을 한국에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친구의 주장이었다. 그는 "한국 외교부의 엘리트 의식은 하늘을 찌른다. 노무현 정권에서 간혹 나타나는 반미주의 노선과 외교부 엘리트들이 충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저하게 외교부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서울을 떠들썩하게 만든 외교통상부 간부의 청와대 대미정책 비판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외교부 대미외교 비난, 그리고 이에 따른 '숙정인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 북미국의 간부들은 지난해 말 송년회 술자리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젊은 놈들은 탈레반 같다"는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발끈했다. 청와대는 "일부 외교부 직원은 기존의 의존적인 대외정책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교부의 '대미 의존 체질'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언론들은 이를 독립파(자주외교파) 대(對) 친미파(동맹중시파)의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의 '외무성을 개혁하는 모임'은 어디까지나 외교정책 결정 과정과 외교체제, 특히 외교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외무성이라는 기구와 조직의 개혁을 제안하기 위한 것으로, 새로운 정책체계의 추구를 지향한 것은 아니다. 또 "외무성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효과적이며 강력한 외교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전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외무성의 엘리트주의와 '미국 스쿨=출세가도의 최단거리'라는 출세통로(커리어 패스)를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미정책을 둘러싼 대립은 단순히 친미 대 자주, 동맹중시파 대 자주외교파라는 외교노선을 둘러싼 갈등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정치.사회, 나아가서는 문화면에서의 갈등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지배층(냉전시대 정치계급) 대 비지배층(냉전시대 비정치계급) ▶연배층(한국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 대 젊은 층(386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전후세대) ▶서울 대 지방▶서울 국립대학 대 기타 대학. 아마도 이 보수.친미 지배계층의 최상층의 상징이 한국 외교부 내의 '로열 패밀리'인 북미국일 것이다.

한국 여론은 청와대의 '숙정인사'를 일정 부분 수긍하고 있는 눈치다. 한국은 오는 4월 총선을 치른다. 엘리트 외교관 비난은 청와대의 작전에 따라서는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최상의 재료다. 외교관들은 순순히 그 덫에 걸려든 것 같다.

만약 한국에 '외교부를 개혁하는 모임'을 만든다면 '프로'의 기술을 연마해 바른 몸가짐과 신중한 행동을 겸비한 외교관을 만들도록 해야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대중영합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의 덫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안일한 자세로 외교에 임한다면 무자비한 국제정치의 덫에 쉽게 빠져버릴 것이다. 이들을 결코 직업 외교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대기자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