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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T 나폴레옹 워털루의 굴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호 21면

소프트웨어의 공룡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달 유럽연합(EU) 1심 법원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패소하자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워털루’로 표제를 달았다. 본고장 미국에서 경쟁업체들의 집요한 공세에 끄떡도 하지 않던 ‘악의 제국’이 나폴레옹이 워털루 대전에서 무너지듯 브뤼셀(워털루 부근) 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 공세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유였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MS는 두 달 안에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 항소할 수 있다.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시장을 90% 지배하고 있고, 미디어 플레이어를 떼어낸 윈도 새 버전을 출시한다 해도 가격 차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서버 소프
트웨어도 80% 지배를 넘어섰고 경쟁업체들과 기술정보를 공유한다 해도 앞으로 몇 년은 걸린다. 기록적인 벌금 4억9700만 유로도 MS의 덩치에 비하면 큰 부담은 아니다.

그럼에도 EU 집행위원회는 기술지배적 기업을 규제하는 명백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기염이다. MS에 대한 승리의 여세를 몰아 칩의 인텔, 온라인 음악시장의 애플, 검색엔진의 구글, 그리고 3G 이동전화표준의 퀄컴 등 정보기술(IT) 공룡들의 독점적 지위 남용 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독점 규제와 경쟁 촉진이 소비자와 자유시장경제에 이롭다는 것은 전통경제에서는 상식이다. 그러나 경쟁업체와의 기술 공유가 도리어 경쟁과 기술혁신 노력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이익을 해친다는 신경제(New Economy)적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들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하이테크 독점’ 기업이고, 하나같이 미국기업들이라는 점에서 ‘EU 측의 시샘 어린 규제’ ‘또 다른 형태의 보호주의’라는 비난도 고개를 든다.

여기에는 경쟁에 관한 미국과 EU 간의 개념 차이도 한몫한다. 유럽이 규제와 국가 개입을 중시하는 데 반해 미국은 자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다. 헌법적 전통도 미국은 금지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게 허용되는 데 반해 유럽은 허용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게 금지되는 쪽이다.

미국이 유독 이들 하이테크 독점에 관대한 것은 국익상의 고려에다, 하이테크 독점은 전통경제의 일반 독점과 달리 봐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전통경제에서는 기술이 변화하면 기존의 독점은 무너지거나 느슨해진다. 하이테크 부문에서는 기술변화로 독점이 도리어 더욱 굳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술선도 기업이 개발한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일단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공급해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위하는 길이다. 반독점법도 시대와 기술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기술기업들은 연구실에서 경쟁해야지 법정에서 경쟁하면 변호사들만 좋은 일 시킨다는 푸념도 들린다.

반면 모든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공동의 기술표준은 어느 한 회사의 독점물이 아니며 경쟁업체들이 함께 운용할 수 있도록(interoperate) 페어플레이와 소프트웨어 기술 공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EU 입장이다. 지배적 지위 그 자체가 반독점 위배는 아니며 네트워크상의 공개성(openness)을 막는 지위 남용이 문제라며 하이테크 독점을 감시하는 ‘글로벌 경찰’ 노릇을 EU가 자임하겠다는 각오다.

이것이 미국과 EU 간의 새로운 대서양 건너 마찰로 번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기술표준은 그것을 개발한 기업의 것이냐, 반독점이 경제자유와 경쟁과 소비자 이익을 두루 보장해 주는가. ‘MS의 워털루’는 대답보다 더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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