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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42) 『왜 그렇게 밖에는 말을 못해요!』 『잡혀서 죽을 게 뻔한 바다를 건너가겠다는 사람한테 그럼 무슨 말을 해?』 그때,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며 길남이 말했다.
『당신 때문입니다.』 『고맙기도 하셔라.』 『당신을 만나고 나서,더욱 여기 있는 게 견딜 수 없어졌어요.서둘러야겠다고 결심을 한 겁니다.나도 목숨 걸고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네 목숨이 그렇게 아깝지도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하니?』 길남이 그녀에게 몸을 돌렸다.어둠이 더 짙게 두 사람 사이를 감싸고 바람이 불며 지나갔다.
『당신,당신을 좋아하게 돼버렸는데,어떻게 더 여기 있을 수가있어요.』 바보 바보.이런 못난이.손으로 길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화순이 그의 가슴으로 쓰러졌다.바람이 마른 풀들을 소리내어쓸며 지나갔다.
화순의 손이 길남의 목덜미를 쓸어잡았다.그녀의 손이 내려오며길남의 몸을 껴안았다.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면서 화순은마음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이런 못난 것아.못난 사내야.여자마음이라는 걸 왜 그렇게도 모르니.
길남이 어쩔줄 몰라하면서 그녀의 허리를 서툴게 안았다.
길고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다만 그녀의 허리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있었다.그렇게 껴안고 서서,길남은 자신의 입술과 혀가 그녀의 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길남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 화순은 눈을 감고 있었다.
내 팔자는 이렇다.누구 하나… 곁에 사람이 있는가,마음을 아는가 하면,떠난다.나이 어리면 어때.내가 이 총각 아낙되어 행주치마 두르고 살자 할 것도 아니었다.다만 그리워하며 믿으며 살고 싶었다.세상 가르쳐 가면서…함께 이 시름 잊 으려고 했건만. 바다를 헤엄쳐 건넌다고 한다.잡히고,죽는건 십중팔구인데…이 정 잊으려고 나 화순이는 또 술이나 퍼먹다가,으흐흐…신발 벗어놓고 치마 뒤집어 쓰고 바다에나 빠지겠지.죽어서나 둥둥 고향찾아 가겠지.육신도 없는 것이 삽짝문 들어서며 엄마 엄마 나왔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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