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붐-이관우’vs‘김호-고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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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호(62·대전 시티즌)와 차범근(54·수원 삼성) 감독. 한국 축구의 두 전설이 만난다.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 프로축구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다. 팀 최초로 4연승을 거두며 7위까지 치고 올라온 대전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 수원은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정규리그 1위를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김 감독은 수원 시절부터 키워온 ‘풍운아’ 고종수(29)를, 차 감독은 지난해 대전에서 데려온 ‘테크니션’ 이관우(29)를 믿고 있다. 중앙일보는 축구팬의 관심이 집중된 이 경기를 앞두고 일간스포츠와 공동으로 ‘김호-고종수’ ‘차범근-이관우’ 인터뷰를 준비했다.

“기필코 대전 원정 첫승”

수원 챔프전 직행 꿈 차범근 감독과 이관우

차범근 감독(右)이 대전 격파 선봉장의 역할을 맡은 이관우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다. [수원=임현동 JES기자]

호화군단 수원은 최근 5년간 대전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김호 감독이 이끌던 2002년 9월 18일 1-0으로 승리한 이후 여덟 차례 대전 원정에서 6무2패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차 감독 부임 후에는 대전 원정 5무1패다.

차 감독은 4월 25일 대전 원정을 떠올렸다. 수원은 1-0으로 앞서다 대전 데닐손에게 동점 골을 허용해 1-1로 비겼다. 경기 후 데닐손은 “그 골은 핸들링이었다”고 고백했다. 차 감독은 “그때 놓쳤던 승리를 되찾아 올 것이다. 나도 나지만 우리 선수들도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주장 이관우의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대전에 있을 때 최고 성적이 정규리그 6위였는데 요즘 (대전이) 잘하고 있어 기분 좋다. 대전이 6강에 올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다. 수원의 우승이 먼저고, 대전을 이겨야 1위를 확정지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기겠다”고 말했다.

동갑인 이관우와 고종수는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울산 합숙훈련 때 일이다. 고종수는 동료들에게 떡볶이를 사 주겠다고 꾀어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은 후 이관우만 남겨 두고 다른 동료와 몰래 숙소로 돌아와 버렸다. 이관우는 지갑 안에 꼬깃꼬깃 접어 놓은 용돈을 모두 털어야 했다.

이관우는 “종수에게 특별히 라이벌 의식은 느끼지 않는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 원정을 가면 대전 팬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돌이켜 보면 난 행복한 선수다. 대전에서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수원에 와서도 팬들이 많이 좋아해 주신다. 4월에 이미 대전 원정을 다녀와서 큰 부담은 없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양 팀 팬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차 감독은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성남에 내준 우승 트로피를 찾아오기 위해 반드시 챔피언전에 직행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3월 21일 FC 서울에 1-4로 참패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경기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교훈을 되새기면서 시즌을 운영해 왔던 게 보약이 됐다. 그동안 수원 팬들에게 호되게 비판을 많이 받아서인지 보다 신중하게 준비하게 된다. 대전을 이기고 여세를 몰아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최원창 일간스포츠 기자

“팀 부활이 우리의 사명”

친정팀 상대 첫 결전 김호 감독과 고종수

김호 감독(左)이 대전에서 다시 만난 고종수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고 있다. [대전=정영재 기자]

전남 드래곤즈를 떠나 1년 6개월을 방황하다 대전에 둥지를 튼 고종수. 그는 수원 시절 은사였던 김호 감독을 다시 만난 뒤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았다.

지금 몸 상태를 묻자 고종수는 “체력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감각은 완전하지 않다. 전에는 볼이 오기 전에 두 수, 세 수를 내다봤는데 지금은 한 수 생각하기도 바쁘다. 패스하지 말아야 할 곳에 해 놓고 ‘아차’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전에 온 뒤 하도 몸무게, 몸무게 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키프로스 전지훈련 가서 다른 선수 2번씩 운동할 때 하루 4번씩 하고, 한 달간 야채만 먹었다. 살은 빠졌지만 근력도 함께 빠졌다. 김 감독님이 오신 뒤 지구력 훈련부터 다시 하면서 조금씩 경기에 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 감독은 “종수가 감각은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데 또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근력이 완전해지기 전에 힘을 쓰면 다치기 때문에 프리킥도 못 차게 한다. 게임은 재밌으니까 좋아하는데 경기 없을 때 자기 관리에 좀 게으른 편이다. 종수도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나이를 먹으면 회복이 느려진다. 운동을 꾸준하게 하되 많이 하지는 말고, 관리와 휴식을 잘 하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종수의 좋은 점은 남을 질타하지 않는 것이다. 선수들은 동료의 패스나 움직임이 나쁘면 짜증을 내는데 종수는 자신의 설계대로 못 움직여 줘도 웃고 넘긴다. 열악한 팀을 소생시키는 게 나와 종수의 사명”이라고 했다.

수원전을 맞는 각오를 묻자 고종수는 “수원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도 당시 골 넣고 활약한 것을 많은 분이 기억해 주신다. 그렇지만 수원에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선수들이 두 팀 간의 오랜 라이벌 의식과 김 감독님의 특별한 입장을 생각해 죽기살기로 뛰겠다며 결의가 대단하다. 경기는 조그만 실수 하나로 결정된다. 절대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비쳤다.

김 감독은 “수원은 꼭 우승해야 하기 때문에 쫓기는 입장이고, 우리는 올해보다 내년을 생각하는 팀이다. 정신력은 우리가 앞선다고 본다. 개인 능력에서 떨어지는 면은 조직력으로 극복해 홈에서 꼭 이기겠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대전=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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