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유훈 … 김 위원장, 핵 가질 의사 없다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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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열고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쏟아낸 남북 정상회담 뒷얘기는 70분간 진행됐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통일비용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특유의 입담으로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대선 과정에서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들이었다. 노 대통령은 "(평양에) 다녀와 여론 지지도가 많이 올랐다. 약발이 얼마나 가겠습니까마는… 당분간 또 까먹을 수 있는 밑천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주요 현안별 발언 요지.

◆북핵 문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 중에 6자회담 진전에 대해 서로 긍정적인 덕담이 오갔다. '10월 3일 6자회담이 잘 진전돼 아주 기쁘다'는 이런 덕담에서 시작해 (북한)핵 얘기가 나왔는데 (김 위원장이) '우리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우리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는 6자회담에 성실히 임할 것이다.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도 성의가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6자회담을 꼭 성공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불러 보고를 하게 했다. 김 부상이 '두 분 정상회담 잘 하시라고 우리가 많은 양보를 했습니다'라고 생색을 한번 내더라.

그런데 실무자들이 문구를 다듬는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표현을 넣을거냐 말거냐,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9.19 선언에 다 있는 거 아니냐며… 북쪽은 북핵 문제에 한국이 끼는 데 대해 전체적으로 심정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느낀 건 그렇다. 김 위원장은 그렇게 시원하게 말했지만 실무하는 사람들은 남북 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라든지, 이런 것을 자꾸 꺼내는 데 대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합의문에) 9.19, 2.13, 이렇게 나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비핵화에 관한 합의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건 탈 잡을 것이 너무 적어서 얘기해 본 거 아니냐라고 판단한다(웃음)."

◆종전선언= "(한국전쟁) 종전선언 문제는 '부시 대통령과 얘기했고, 후진타오 주석과도 만나 서로 합의를 봤다'고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종전선언, 나도 관심 있습니다'라며 '그거 한번 추진해 봅시다' 해서 간단히 얘기가 끝나버렸다. 더 없다.

다만 '지금 (평화협정) 협상에 바로 들어가기는 조금 이른 것 같고, (종전)선언하고, 그 다음으로 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던 것 같다. 나중에 문안 다듬는데 보니까 3자, 4자라고 돼 있더라. (실무자에게) '이게 어느 쪽 문안이냐' 했더니 북쪽에서 나온 문안이라고 해 별로 관심 안 갖고 넘겼다.

나중에 직접 협상한 쪽에서 듣기로는, 중국이 아직까지 분명하게 표현해 놓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게 아닌가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3자, 4자라는 것은 사실 나도 뚜렷한 의미를 모르고 있다. 그때까지 중국이 이 점에 관해 공식 견해를 밝힌 바가 없기 때문에 아마 '중국은 의사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는 여유를 둔 거 아닌가 싶다. 그 뒤 중국이 의사 표시를 했기 때문에 4자로 확정된 거라고 생각한다.

(종전선언) 시기는 내 임기 동안에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나도 '상당히 좀 버거운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임기에 하지 못하더라도 국제적으로, 남북 간에도 굳히고 가는 게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관심 있다'고 할 때 문서로 굳혀놔야 다음 대통령이라도 하지 않겠나. 임기 안에 하고 싶지만, 그건 내 희망대로 되는 게 아니다."

◆김정일 평가= "김 위원장이 자기 국정 상황을 소상하게 꿰뚫고 있어 상당히 놀라웠다. 내가 생각해도 저 정도면 아주 기억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 아주 소상한, 국정 구석구석에 대해서 소상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체제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된다 안 된다, 좋다 나쁘다 이런 의사 표현이 아주 분명했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고 과연 진짜 권력자답다, 이런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

북한 전체의 인상은 우리가 제3세계 여러 나라들, 1인당 국민소득이 500불 내지 1000불 사이에 있는 국가들에서 보는 모습하고 평양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발전 전략만 잘 채택하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빠른 속도의 발전이 가능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다만 김 위원장 이외의 다른 여러 지도층의 경직성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점이 있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해볼 필요가 있다. 타도할 수 있는가? 밉거나 곱거나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동반자다. 할 말도 좀 참고, 하기 싫은 일도 좀 하며 싸움 날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건 되도록이면 뒤로 미루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통일비용론= "비용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번 합의의 결과로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면 많다, 적다 하는 것보다는 할 일은 해야 된다. 비용이 들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그게 더 중요한 근본적인 전제다. 이번 합의를 보고 수십조원 얘기하는 것은 매우 과장됐거나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다. 기업적 투자, 즉 민간 차원의 기업 투자까지 다 보태서 혹시 수십조원이 투자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만일 기업적 투자가 수십조원 일어난다면 우리는 대성공한 것이다.

기업적 투자의 부분과 정부 지원적 성격의 부담 부분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수십조원' 하는 건 왜곡시키는 거다. 전체적으로 정부 지원과 기업적 투자가 병행될 것이지만 다음 정부에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지원 규모에 관해 내년 예산에 편성돼 있는 남북협력기금이 1조3000억원 정도인데 세수가 199조 정도 되니 1%가 안 된다. 통일비용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베트남에 투자하는 건 투자고, 북한에 투자하는 건 통일비용인가? 투자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투자 회수 기간은 좀 걸릴 거다."

박승희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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