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뒤늦게 밝혀진 '수류탄 대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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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놓고 두 개의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05년 7월 초 대국민 서신을 통해 이를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을 때와 27개월 뒤인 2007년 10월의 발언이 영 딴판이다. 2005년 7월 초 그는 절절했다. 대국민 서신에서 "지역 구도와 여소야대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 국무총리와 내각을 국회 다수 정파에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20일쯤 후엔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다.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7월 28일 공개된 당원 편지)이라고 강조했다.

대연정에 대한 순수와 열정 과시는 계속됐다.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 봤다"고 강조했다. 그해 8월 29일 열린우리당 의원연찬회에서였다. 그 즈음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문희상 당시 의장 등 몇몇을 빼곤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해 9월 한나라당 박근혜 당시 대표를 만나선 "내 정치인생이 여기에 다 걸려 있다"고 호소했다. 박 당시 대표는 이를 일축했다. 노 대통령의 구애는 지난해 말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그는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윤광웅)국방부 장관 불신임안이 통과될 줄 알았다. 그걸 전제로 연정 계획서를 (상의할 이들에게) 돌려놨는데…그때 내다본 게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데굴데굴 굴러와 가지고 막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렸다." 한나라당의 내분을 의도한 정치적 카드였다는 속내를 토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어느 쪽 모습이 진짜일까. 어느 한 쪽이 진실이라면 다른 한 쪽은 거짓이다. 노 대통령의 정직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확산되는 이유다.

물론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는 정략적 판단뿐 아니라 몇%의 진정성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사여구와 진정성을 앞세우지 말아야 했다. 대연정 제안으로 대혼란에 빠진 건 바로 범여권이었다. 당.청 갈등과 여권 분열의 씨앗이 그때 뿌려졌다. 노 대통령의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