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체조요정’ 90년 아시안게임 은메달 이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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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도 한때는 ‘요정’ 소리를 들었다. 1991년 방한했던 한국계 러시아 체조스타 넬리 킴(현 국제체조연맹 기계체조 기술위원장)이 “소련에 데려가 가르쳐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리여중 3학년이던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체조 마루운동 은메달리스트 이희경(32·전북체조협회·사진). 세월은 어느새 요정의 눈가에 얄팍한 주름을 남겼다.

이희경은 10일 호남대 체육관에서 열린 제88회 전국체전 체조 여자일반부 단체전에 출전했다. 전북체고 1학년이던 91년 전국체전에 첫 출전해 4관왕에 오른 이후 17년간 전국체전 개근이다. 그간 거둬들인 메달만 40개가 넘는다. 지난해에도 개인종합 금메달 등 금1, 은1, 동2개를 수확했다.

어쩌면 올해가 현역으로 뛰는 마지막 체전이 될지도 모른다. 올 초 이리중 체육교사로 임용된 그는 은퇴를 고민 중이다. 은퇴 얘기가 나오자 팀 동료 박지숙(35)이 웃는다. 87년 한국 여자체조 사상 첫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20위 내(18위)에 진입했던 박지숙은 96년 결혼과 출산으로 은퇴했다가 99년 선수로 복귀했다. 올해는 팔목 부상으로 뛰지 않지만 세 살이나 어린(?) 이희경의 은퇴 운운에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한국 남자체조는 88년 서울 올림픽 도마에서 박종훈이 동메달을 딴 이래 올림픽 때마다 메달리스트가 나왔다. 하지만 여자는 이희경 이후 아시안게임에서조차 은메달 이상을 따 낸 선수가 없다. 그가 여태껏 선수로 뛰었다는 게 오히려 한국 여자체조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희경은 결혼도 잊은 채 철저한 자기관리로 오늘까지 왔다. 하루 3~4시간씩 훈련했고, 나이가 들면서 붙는 살을 빼기 위해 식이요법도 했다. “혹시 뼈가 시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언니들은 비가 오면 뼈가 시리다고들 하는데, 근육운동을 꾸준히 한 덕분인지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광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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