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정중동(靜中動)의 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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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32강전 하이라이트>
○·한상훈 초단(한국) ●·마샤오춘 9단(중국)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인 마샤오춘(馬曉春) 9단은 올해 43세. 중국 기사로는 최초로 세계대회서 우승했고 전성기 때는 이창호 9단과 우승컵을 놓고 명승부를 펼쳤던 천재 기사다. 어느덧 노장의 대열에 들어선 그는 주최 측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참가했고 한국의 한상훈 초단이 자신의 상대로 그를 지명했다. 마샤오춘은 여자 기사(김혜민·조혜연)의 지명 순서가 맨 끝인 14번째와 16번째인 것을 보고 “여자 기사에게 지명 우선권을 주자”고 제안,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장면도(84~95)=흑이 실리에서 약간 앞서 있지만 백도 중앙의 두터움이 상당해 팽팽한 국면. 그러나 마샤오춘 9단은 좌하에서 너무나 기세 좋게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위기를 맞게 된다. 백에 흑로 뻗은 것은 이제 와선 어쩔 수 없다. 하지만 88이 선수라서 중앙에 붕 뜬 흑 석 점이 풍전등화의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한상훈이 90으로 밀자 91의 날카로운 잽이 터졌고 뒤가 켕긴 백이 94로 가일수하는 틈에 흑은 95까지 훨훨 날아가버린 것. 한 시대를 호령하던 마샤오춘의 임기응변에 한상훈이 홀려버린 것일까. 백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힘이 너무 들어간 90이 유죄였다. ‘참고도’ 백1로 곱게 지켜 두는 수가 정중동의 묘리를 살리는 호착. 흑은 기껏 달아나야 2의 한 칸 정도인데 이때 백3으로 덮쳐 가면 흑은 십중팔구 사망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한상훈은 바둑이 끝날 때까지 가시밭길을 헤매야 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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