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호칭 김일성사망 직후부터 어버이수령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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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북한 방송들은 20일부터 金正日을「우리의 운명이고,기치이며,위대한 태양」인「어버이 수령」이라고 불렀다.
金日成 사망 직후부터「위대한 수령」「또 한분의 탁월한 수령」이라고 했으며,「閣下」란 호칭도 사용했다.
그동안 金正日에게 붙여진 호칭이나 수식어는 30여가지에 달한다.호칭의 변화는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권력승계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70년대초 그가 金日成 후계자로 정치권력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등장한 호칭은「黨중앙」이었다.
73년9월 노동당중앙위 제5기 7차 전체회의에서 金正日이 당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및 선전선동 담당비서로 선출된 이후 등장한 이 호칭이 처음에는 당을 가리키는 것인지,사람에 대한 것인지 불확실했다.
그러나『영광스런 당중앙에 대를 이어 충성…』云云하며 金正日에대한 호칭임이 분명해졌다.
그후「유일한 지도자」「영명하신 지도자」「존경하는 지도자」등이뒤따랐지만 金正日에 대한 70년대의 대표적 호칭은「당중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金正日은 당정치국 상무위원.당군사위 위원.당비서로 임명된다.이를 계기로 후계자 추대작업이 공식화 하고,호칭도 질적 변화를 맞게 된다.
83년2월 그의 41회 생일을 맞아 등장한「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북한사회에서 金正日을 가리키는 80년대의 대표적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줄인「친지동」이란 은어가 金正日을 가리키는 말로 주민들사이에 회자된다는 귀순자들의 증언이 말해주듯 이 호칭은 80년대 金正日을 가리키는 대명사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함께「위대한 지도자」「위대한 영도자」따위도 신문.방송등언론매체를 통해 80년대에 널리 사용된 호칭들.
90년대 들어 金正日에 대한 호칭은 金日成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빠른 격상 행진을 거듭,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그동안 金日成에게만 사용됐던「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이 선보인 것은 91년7월.당시 인민경제대학 창립45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이 대학총장 김국훈은 보고를 통해『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주체위업 완성의 위대한 수령으로…』라고 말해 金正日을 수령지위에까지 올려 놓았다.
이듬해 50회 생일을 맞아 金正日은 드디어「경애하는 아버지」호칭까지 얻게 된다.생일을 기념해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소년단전국연합단체대회에서 社勞靑위원장 崔龍海는『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영명한 지도자이시며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이시며 우 리 학생소년들의 경애하는 아버지』라고 강조,金正日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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