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4년 땀밴 法服벗은 김용준 前대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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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법원의 星座인 대법관에 올라 6년 임기를 마치고 9일 퇴임한 金容俊대법관(56.고시9회).60년6월21일 법복을 입은지 34년만에 법관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만19세에 고시 수석합격」,「59년 서울대법대수석 졸업」,「소아마비 출신 최초의 대법관」등 그를 소개할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 말해주듯 그는 모든 장애인들의 꿈이요 사표였다.
퇴임후에도 친구.친지들을 만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15일 오후 서울은평구갈현동 자택에서 만났다.
-60년6월21일 법관에 임명된후 6년간의 대법관 임기가 끝난 10일까지 34년20일만에 법복을 벗게됐는데 감회가 어떠십니까.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신체적 불편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6년을 포함한 법관생활을 대과없이 마치게 돼 선배.동료.
후배 법관들이 고맙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대법관은 어떤자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정의를 지키는 양심의 보루라고 생각합니다.법원이란 각종사회현상을 최종적으로 처리해주는 하수구의 기능을 하는 곳인데 법원의 판결등이 문제가 없으면 별소리 없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말들이 많아 어려움이 많았지요.대법관 생활 을 해보니 우선 외롭고 사회및 소송당사자가 요구하는 것도 많아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지요.또 기본적으로 일이 너무 많아 매우 힘들었습니다.실제 대법관으로 재직하는동안 한주일에 4~5일정도는 하루 두시간정도 집에서 사건기록을 검토하느라 개인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고 좋아하는 영화도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슨 동기에서법복을 입게돼셨습니까.
『몸이 불편해 전문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법조계에서일하게 됐죠.검사보다 판사가 된 것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어떤 것인지요.
『92년 자동차보험에서 무면허로 운전하면 보험회사가 책임이 면책된다는 「자동차보험 무면허 면책약관」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저혼자 무효쪽으로 소수의견을 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또 지난3월 제가 주심을 맡았던 생수시판허용 판결도 의미있 다고 생각합니다.』 -생수시판허용 판결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들었는데요.
『당시 1년여동안 법률검토와 함께 생수업자.소비자들을 만나 의견을 직접 들어 보았습니다.접촉한 사람 대부분이 생수시판에 찬성해 그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너무 커놀랐습니다.』 -평판사 시절 잊혀지지않는 추억담을 하나 들려주시죠. 『26세이던 63년4월 서울형사지법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당시 金澤鉉부장판사(작고)등과 함께 6.25때 부하직원을 즉결 처분했고 4.19시절 景武臺앞에서 발포한 혐의로 구속된 宋堯讚장군을 구속 적부심으로 풀어준 것이 기억에 새롭군 요.그때는 단지 원리원칙대로 한다는 판단아래 이같은 결정을 내렸는데당시 현직 검사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습니다.』 -평소 재판에 대한 지론은 무엇입니까.
『재판의 결론은 개인의 법률소양.경험.개성등이 종합적으로 가미된 직관적인 판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재판은 전인격적인 판단이라는 뜻이지요.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법부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법원은 국민과 대립관계에 있지 말고 국민의 편에 서야합니다.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하는 것이 사법부의 사명입니다.또한 제도보다는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후배 법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해주시지요.
『개인간 또는 국가와 국민간의 분쟁을 해결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자존심을 갖고 판결을 해야 합니다.일반적으로 재판은 사실인정을 하고 이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는 것인데 법률이론은 판례로확립되고 있지만 사실인정을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 요해요.따라서 재판의 요체인 사실인정을 형식 논리로 하지 말고 구체적인 타당성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입니다.또 실정법과현실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인데 법률가는 이를 좁혀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평소 생활신조 또는 생활철학은무엇인지요.
『사람의 유형은 ▲꼭 있어야 할 사람▲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없어야할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꼭 있어야 할 사람이된다」는 원칙아래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그동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없습니다.』 -장애인으로서불이익을 당한적이 있습니까.
『5.16이 일어난 직후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공무원을 해직시킬때 판사를 그만둘뻔 한 것을 제외하고는 불이익을 당한적이 없고 이 또한 사회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 미련도후회도 없어 ……○ -특히 장애인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씀은.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고 모두에게 결함이 있게 마련이에요.남보다 모자란다고 한탄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사람은 몸과 정신이 완전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어느 한부분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밖 의 다른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맞추어 열심히 살면 됩니다.저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고장애인으로서 한맺힌 기억도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변호사를 개업해 조세나 행정소송 분야에 치중하고 싶어요.하루하루 열심히 일한다는 자세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는 1년반동안의 열애끝에 63년 결혼한 徐采元여사(53)와 사이에 2남2녀를 두었으며 요즘도 두달에 한번정도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는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다.
두 딸은 출가했으며 맏사위는 변호사,둘째사위는 판사이고 서울대법대및 고대법대를 각각 졸업한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孫庸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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