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새들의 조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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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비들이 떼지어 만수대로 날아와 어두워질 때까지 김일성동상을맴돌았다.기러기 세마리는 동상에 앉아 구슬피 울다가 공원을 세바퀴 돈 뒤에 어디론가 사라졌다.한무리의 참새떼는 학교 교실로들어가 한참 운 다음 동상으로 날아가서 10분 간 묵념을 올리고…. 평양방송이 김일성 사망을 애도하는 프로에서 전했다는 만수대 스케치다.金이 유독 새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그가 죽어서 새들의 집중적인 조문을 받았다니 어이없다.
일국의 국영방송이 장송곡을 내보내며 이런 맹랑한 이야기 를 한다는것은 확실히 현대의 우화가 아닐 수 없다.
새들이 울었다는 이야기는 語不成說이니 웃어넘긴다 치더라도 북한주민이 보여준 광란의 울부짖음은 간단히 넘길 것이 못된다.미국 CNN이 생생히 중계한 장례-추도식은 우리완 너무나 다른 모습의 同族이 바로 이웃에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 게 했다.광란의 울음바다를 연출한 평양행사는 마치 수백만 군중이 펼치는 눈물의 매스게임 같았다.
우리 민족에겐 예부터 눈물이 많았지만 울음이 이렇게 집단화되고 일사불란하게 나타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그 눈물의 성격이진짜건 가짜건 간에 단일민족이 갖는 뿌리 깊은 울음의 정서마저국토분단과 함께 갈라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여하튼 김일성은 죽으면서까지「세계에서 가장 잘 우는 코리언」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심는 아름답지 못한 공적을 세웠다.그런중에도 그가 다스리던 백성들에게 목청껏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공로만은 업적으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르 몽드紙의 만평대로 북한주민들은 모처럼 울 권리를 향유,그동안 못다 운 울음을 마음껏 터뜨리는 후련함을 누렸을 법하다.CNN이 장시간 중계한 평양의 울음바다 현장엔 한마리의 새도 얼씬하지 않았다.울다 지쳐서 못 나왔는지 모르지만 못할 것 없는 북한당국도 새떼만큼은 동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本紙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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