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업 신규사업 규제 명분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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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기업의 새로운 사업진출이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제철사업의 진입규제를 주장하는 포항제철과 상공부,그리고 진입을 주장하는 현대그룹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매번 신규 사업진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우선 진입규제를 주장하는 측은 신규 기업의 진출로 공급이 수요보다 훨씬많아지는 이른바 공급과잉을 걱정한다.
이같은 주장의 설득력은 수요전망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에 달려있다.때문에 지난 19일 개최된 철강민간협의회에서도 기존기업과 신규기업이 수요전망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2001년까지 부족할 공급분을 포철은 약 1백50만t,현 대그룹은 약 1천만t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현저히 다른 예측치는 관심있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수요를 예측할 수 있을까.인간의 불확실성(uncertainty)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으로 말미암아 정확한 전망은 거의불가능하다.특히 기술진보가 빠른 산업과 소재산업 ,그리고 장기전망의 경우 예측의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이처럼 예측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왜 수요전망에 의존하는가.미래의 길흉화복을 알기 위하여 점을 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의지할 만한 무엇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학자들 역시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정확한 전망을 할 만한 능력이 없다.
한편 진입규제는 기존기업에 경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힘의남용을 가져다 준다.속담에『코가 꿰었다』는 말이 있다.힘을 가진자가 결정적인 약점을 잡은 상태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경제학에서는 이를 힘있는 자 의 기회주의 행동이라 말한다.특히 소재산업이 독점력을 가질 때 폐해는 심각하다.소재를 공급받는 기업은 가격이나 조건면에서 많은 어려움을겪을 수밖에 없다.GM이 자동차 몸체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던 피셔 보디(Fisher Body)社의 전횡을 견디다 못해 수직계열화를 행한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다.
다음으로 기존기업은 진입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과잉설비를 확보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초과공급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이미 기존업체가 충분한공급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신규기업이 진출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의 형식을 가진다.
현대그룹이 제철사업에 진출할 의사를 밝히자마자 기존업체들은 너도나도 증설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설비확장은 기업의 공룡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경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대형화와 집중화는 정당화된다.그러나 인위적인 진입장벽을 만들기 위한 기존기업의 대형화는 경쟁력과는아무런 관계가 없다.
흔히 우리는『국민경제를 위하여』라는 이름아래 진입을 제한하는명분을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소비자들의 희생 위에 기존기업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정책이었다.진정으로 우리가 국민경제를 위한다면 누구든 언제라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
때로는 단기간의 공급과잉으로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원활한 진입이 국민경제에 가져올 편의에 비한다면 단기적인 비용은 거의 무시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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