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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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3.실종 ○11 내가 촌스러운 건지 모르지만,써니와 관계를 맺고 나서부터,나는 써니 말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작정했다.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 어쨌든 많은 것들이 내 뜻대로될 거였다.묘한 거였지만,어떤 책임감 비슷한 것도 내 속에서 작 용했던 것 같다.이젠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거였다.
웃지 말기 바란다.처 자식을 팔면서 비겁하게 사는 남자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수업시간이 끝나고,학원에 가기 전까지 학교 도서실에 남아 있겠다는 내 말에 악동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얘가 갑자기 왜 이 렇게 타락했지…? 그 작심이 결과적으로는 그 월요일 하루밖에 견디지 못하고 말았지만,착해지고 싶다면 누군가를 사랑해봐야 한다는 말은 그런대로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는 말이다.
『달수 오빠,어떤 여자분이 찾던데….』도서실에 앉아 있는데 문학반 후배인 1학년 여자애 하나가 나를 찾았다.『무슨 중요한일인가 봐요.』 『눈이 크고 쌍꺼풀이구 맞지? 멋쟁이구…맞지?』 『뭐 대강…아줌마던데…굴다리로 가는 쪽 길 건너에 서 있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나는 1학년 여자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가방을 쌌다.피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다짐하면서.
써니엄마는 보라색 반팔남방에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서 있다가여기야 달수 하고 나를 불러 세웠다.나는 우선 꾸벅 절을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우리 이야기 좀 해.우리 선희 어딨지?』 써니엄마의 눈이 퀭했다.표정이나 목소리가 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평정을 잃고 있었다.나는 어쩐지 죄를 지은 것처럼느껴졌다.아 이렇게 심각한 일인가.우리가 서로 원해서 치른 행사가 써니엄마에게는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인 것일까.
『말해줘야 해.선흰 어딨어?』 『써니가…선희가 없어지기라도 했나요?』 『어젯밤에 같이 있지 않았단 말이야?선희가 어젯밤에집에 들어오지 않은 걸 달수는 모른단 말이야…?』 『…모르는데요.정말요.써니가…집에 안들어왔단 말이에요?오늘…학교에도 안갔단 말이에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써니엄마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써니엄마는 현기증이 이는 모양이었다.어디좀 앉아서 이야기해.
무슨 가게들이 있는 쪽으로 몇발작을 걷다가 써니엄마가 말했다. 『달수가 토요일 밤에 우리집에 왔던 건 알고 있어.』 『맞아요.그런데 일요일날엔 만나지 않았거든요.정말요.』 『선희하고무슨 일이 있었다면…나한테 다 말해줘야 해.』 『…….』 나는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써니엄마를 따라 걸었다.
『달수를 야단치려는 게 아니야….다 말해줄테야?』 『써니가 원하지 않은 일은… 선희에게 아무 일도 없었어요.』 『우리 선희가 뭘 원했지?』 써니엄마가 무슨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가 멈춰 서서 내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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