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부끄러운 수출독려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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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8일 부터 서울에 머무른후 21일 떠난 피터 서덜랜드 GATT 사무총장이 19일 상공자원부를 방문했다면 좀 놀랐을 것이다.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을 앞둔 세계 12위의 교역국가에서 정부가 수출「목표」를 늘려잡은 후 이를 위해 기업들을「독려」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상공자원부는 품목담당관회의를 열어 올해 수출전망치를 4억달러 더 늘린 9백15억달러로 정하고 수출독려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1천억달러 가까운 규모의 수출을 하는 나라에서 겨우 4억달러를 늘리기 위해 기업들을 독려한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그것이 쥐꼬리 만한 무역적자를 역시 쥐꼬리(국제수지 기준 5억달러)만한흑자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라니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공자원부가 또 올해 對日무역역조를 1백억달러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1백억달러」라는 숫자가 주는 심리적부담을 감안하면 그나마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라면 몰라도 경제관료라면 경제규모에 비해 무시할 만한 적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며 1백억달러라는 숫자의 상징성 따위와는 더더욱 거리를 두어야 한다.
對日 적자가 99억달러면 괜찮고 1백1억 달러면 문제며 쥐꼬리 흑자라도 쥐꼬리 적자에 대면 경제상황을 돌려놓기에 충분하단말인가. 더구나「독려」와「지원」은 그 뜻이 다르다.독려에는 정부가 상급자로서 몸이 굼뜬 기업들을 뛰게 만든다는 70년대식 思考가 들어있다.
자유무역시대의 상징인 WTO의 사무총장 후보를 낸 나라가 아직도 기업에 수출을 늘리라고 일일이 간섭하고 있으니 앞뒤가 안맞는 모습이다.
물론 美國정부도 최근 이례적으로 기업의 수출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지원」이지「독려」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對日역조는 우리의 산업구조가 단번에 개선되지 않는한 불가피한 현상이다.또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면 日本으로부터의 자본재 수입이 늘어 역조는 언젠가 1백억달러를 넘게 마련이다.
전반적인 산업경쟁력을 향상시켜 수출이 저절로 늘어나도록 정책을 펴야 할 정부가 4억 달러를 더 수출하려고 22일 열겠다는종합상사협의회에서 종합상사들을 어떻게「독려」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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