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월요일 아침,학교에 가서 교실에 앉은 다른 아이들을 보니까 어쩐지 나혼자 더 외로워진 것같았다.저것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남자와 여자의 비밀이 어떤 건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나혼자만이 미리 어 른이 된 것같은 느낌이었다.아 저 순진무구한 것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함께 논하랴.
점심시간에 영석이 상원이와 함께 뒷산에 가서 쪼그려 앉아 각자의 지난 주말을 말하는데 나는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영석이가 새로 사귄 여자애 이야기를 했던 거였다.무슨 발레인가를하는 여자애와 호암아트홀에서 하는「노스트라다무스 」라는 영화구경을 갔다고 했다.고교생이 볼 수 있는 영화중에서 일부러 야한걸 골라서 간 거라고 했다.
이러지마,이러면 영활 못보잖아.
경미라는 여자애가 영석이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고 했다.영석이가 큰맘 먹고 경미의 손을 잡았을 때 말이다.다행히 경미는 손을 잡아빼거나 하지는 않아서 영석이를 기쁘게 했다.
『근데 손바닥에서 너무 땀이 나는 거야.너희도 그랬니.…그거괜히 창피하대.야한 장면에서는 더 그러는 거야.걔도 땀이 나구나도 나구…그래서 나중에는 흥건하게 젖었는데 말이야,걔가 손수건으로 닦아주더라.와 하여간 미치겠더라구.』 『겨우 손잡은 거같구 그러냐 짜샤.』 상원이었다.그 정도는 약과라는 말투였다.
『나중에는 다른 델 만져보려구 그랬거든.그래서 허벅지 있는 델 쓰윽 만져봤거든.근데 너무 딱딱한 거야.발레를 해서 그런지하여간…자꾸 숨이 막혀서 몰래몰래 숨을 내쉬는데 말이야…이거 죽겠더라구.』 『니가 만지는데 가만히 있어? 걔 경민지 하는 얘가….』 『그냥…처음엔 내 손을 살짝 치우긴 했는데…내가 또그러면 얼마동안 가만히 있기도 하구…그랬지 뭐.』 『그럼 날라리 아냐.발레니 그런거 하는 애들 다 그렇다구.』 『아는 척 하지마 임마.경민 그런 애가 아니라구.걔네집이 얼마나 엄한지나알어 짜샤.아홉시 넘어서 들어가면 난리난다는 거야.』 『어이구어디서 왕내숭 하나 물었구나 병신새끼.』 『뭐라구.이 쪼다같은놈 좀 봐.너나 똑바로 하구 다니란 말이야,그 왕십리에 산다는계집애는 어디 갔어?』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나는 써니와의 일을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달수 넌 뭐했냐.전화하니까 없대.』 나는 싱긋 웃어보이기만하다가 입을 열었다.
『특별한 건 없었어.토요일날은 써닐 만났구 일요일날엔 앞으로공부할 계획을 세웠지.너희들은 임마 대학갈 생각들은 안하니.지금 이러는 건 다 소용없다구.』 『또 써니엄마한테 교육받은 거아니구? 짜식은 그저 장모님 말씀이라면 사죽을 못쓰네.크게 될놈은 글쎄 다르다니까.』 『아니 써니만 만났어.써니 엄만 늦게들어오거든.』 『만나서 뭐 했냐니깐….』 『아무 일도 없었지만…난 써닐 보기만 해도 좋은 걸 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