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좋았던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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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비슷한 연배의 소설가들 몇몇이 모여 점심을 먹다가 요즘 젊은후배들 이야기로 화제를 삼게 되었다.한마디로 뭉뚱그려 버릇들이없다는 공통된 의견이었다.도무지 선배 어려워할 줄 모르고,피차누군지 빤히 알 만한 사이인데도 눈이 마주칠 경우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으며,열살 이상 차이가 나는 대선배에게 호형하기를 예사로이 한다는 등등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요즘 젊은 문인들의 버릇없음의 극치는 사제 관계의 묵살이었다.한 동료가 탄식해 마지않았다.자기 손으로 심사해 자기 손으로 문단에 내보낸 사람이 몇명인데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아직도 얼굴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마냥 씁쓰레 하는 그의 심정에동조할 수밖에 없었다.애당초 예정에 없던 후배들 성토대회는 이내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으로 이어졌다.문단 안에 위계질서가 시퍼렇게 작용하고 선후배간 에 예절과 의리가 미덕으로 통하던 불과 얼마전의 그 좋았던 시절,좋았던 관계를 아쉬워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말고 우리가 어느새 현실에 떼밀려 과거쪽 동네에서 안정을 취하려는 퇴물연배로 변모했구나 하면서 나는묘한 감회에 빠져들었다 .
심사자와 당선자 사이에 자연스레 사제관계가 이루어져 끈끈한 유대로 서로 내왕하며 교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아직도 우리 문단 일각에 분명히 남아 있다.등단 연도가 삼사년만 빨라도,나이가 서너 살만 많아도 형이라 부르기가 차마 거식해 서 선생님으로 깍듯이 호칭하면서 선후배간의 예절을 중시하는 묵은 세대가 아직도 우리 문단 안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아무리 시대가 무섭게 변했다 하더라도 굳이 좋았던 시절,좋았던 관계까지 서둘러 용도 폐기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왜냐하 면 불원간에 그 전통의미덕과 예절의 수혜자 위치에 서게 될 대상은 바로 요즘의 젊은문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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