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교회도 선거운동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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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선 전에 보지 못했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 개신교 최대 교단 가운데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총회장 김순권 목사)가 오는 4.15 총선에서 온 역량을 기울여 공명선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교단 차원에서 정치에 '힘'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건 기독교계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예장통합은 전국 2백50여만명의 신자, 7천여개의 교회가 있는 대형 교단이다.

김순권 목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지금까지 교인들에게 알아서 투표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다소 막연했다. 이번 운동은 말이 아닌 행동의 문제다"고 말했다. 그만큼 현 시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장통합은 조직적 캠페인을 벌인다. 중앙.지역.교회별로 전담기구를 만들고, 각종 불법 선거 운동을 감시할 작정이다. 투표에도 반드시 참가, 후보자의 경력.자질 등을 비교하겠다고 했다. 다만 특정 정당.정파를 편드는 '정치 세력화'나 기독교인의 '여의도 입성'을 돕는 건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정립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파장은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김목사는 "총선연대가 추진 중인 당선.낙선 운동과 성격이 다르지만 이번 총선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밝혔다. 또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다른 교단과 연계, 범교단적 운동으로 펼쳐가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교적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당선.낙선 운동도 고려하고 있다. 기장 국내선교부장 김형기 목사는 "오는 17~18일 정책협의회를 열어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시민단체와 공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패 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 일에 교회가 손놓고 있을 수 없다는 자세다.

연초 한국 개신교는 교단마다 '자정'을 약속했다. 그간 지적받았던 성장주의를 반성하고, 사회의 고통과 함께하는 교회를 다짐했다. 이번 선거운동이 성경에 명기된 '소금의 짠맛'을 보여줄 수 있을지… 교회는 교회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만만찮은 숙제를 껴안은 요즘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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