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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경제포럼] 공정위의 개혁 로드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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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중앙일보 경제포럼 제2차 토론회는 지난 1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 강철규 위원장을 객원 연사로 초대했다. 발제 제목은 '한국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토론은 즉시 공정위의 기능 쇄신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흘렀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공정위의 과제와 역할도 변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편집자]

▶사회=강철규 위원장의 발제에 대한 토론이 있겠습니다. 반론.보완.질문 어떤 형식이라도 좋습니다.

▶박원암=공정위가 효율성에 대한 검토 없이 대기업 정책을 끌고 간다고 말이 많습니다. 대기업들은 출자총액제한 제도 때문에 하고 싶은 투자도 못 한다고 야단입니다. 소유 지배 구조 개선을 출자총액제한으로 이룰 수 있습니까.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며, 이것이 또 하나의 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좌승희=시장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배 구조 역시 투명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공정성.투명성을 높이는 게 공정위의 목표라는데 그 정의가 무엇입니까. 계열사를 두는 것이 불공정입니까. 경쟁 정책의 목적은 효율적인 독점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장의 힘으로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강철규=1997년 말에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했더니 17조원이던 타회사 출자가 98년에 31조, 99년에 51조로 늘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에 다시 도입했는데, 로드맵에선 이 규정에서 빠져나갈 수문을 4개나 만들어놨습니다.

▶사회=출자 규제를 넘어 소유와 지배 구조 문제는 어떻습니까.

▶최정표=재벌 문제는 소유 지배 구조가 핵심입니다. 총수에 의한 전근대적인 경영 시스템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선 자금 조사에서 보듯이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 운영이 불투명하고, 비자금 만드는 종래의 관행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규제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성일=현재의 지배 구조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당장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개입한다는 논리인데, 문제가 생기면 피해 보는 플레이어, 즉 경제 주체들이 조정합니다. 공정위는 공정 거래를 저해하는 규제를 척결해야 하는데, 공정위의 규제가 오히려 더 심합니다. 시장개혁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강철규=기업 소유주는 계열사 지분을 넓히는 방식으로 투자에 비해 엄청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투자 지분과 의결권 행사를 비교한 '의결권 승수'가 8배.16배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고쳐야 합니다. 의결권 승수가 2배 정도 되는 기업은 출자총액제한에서 제외시킬 것입니다. 자율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갖춰지면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좌승희=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적게 갖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서윤석=미국에도 최고경영자(CEO)의 도덕적 해이가 심합니다. 이 탈선을 막기 위해 '주인 찾아주기'가 생깁니다. 삼성은 40개 계열사가 있는데 구조조정본부가 최고경영자를 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조본의 이런 순기능을 없애면 누가 CEO를 모니터하겠습니까.

▶박원암=의결권 승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해결 방법이 옳은지는 의문입니다. 투자를 유도하려면 의결권 승수가 높더라도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남미는 개혁을 외치다가 거덜났는데, 시장 개혁을 강하게 하는 정부는 시장을 깨는 데도 강합니다.

▶사회=관심을 거시 정책 분야로 돌려볼까요.

▶이제민=부실 기업을 놓고 재경부는 우량 계열사들이 도와주라고 하고 공정위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적 자금을 아끼려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가 8백억달러인데,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고려해서, 즉 우량 기업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사실을 알면서 주식을 샀습니다. 여기서 그룹 내부 금융 시장의 고리를 끊으면 외국인이 보유한 우량 기업은 주가가 크게 뜁니다. 그들은 앉아서 큰돈을 버는데 이것이야말로 국부 유출입니다.

▶서근우=출자총액한도제를 97년에 폐지한 것은 당시 증권시장을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하면서 기업들에 경영권 방어 수단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정 거래 차원에서 폐지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정책의 여러 맥락을 고려해서 폐지한 것이었습니다.

▶강철규=공정위 업무의 비중으로 보면 카르텔.M&A.경쟁제한.하도급거래.소비자보호 정책 등이 80%를 차지합니다. 사후적 시정 조치가 대부분이고, 20%가 시장개혁.대기업 정책 같은 것입니다.

▶사회=공정 거래 혹은 공정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최종원=경쟁 정책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게 아닙니다. 공정위가 그동안 카르텔이나 기업 결합과 같은 경제적 분석보다는 기계적 법 집행에 치중했는데, 앞으로는 경쟁을 보호하는 법 집행이 필요합니다.

▶신광식=공정위의 법 집행 능력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합작사업.기술거래.전략적 제휴 등에 문제의 소지가 많습니다. 카르텔에 대한 강제 조사권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이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강철규=공정위가 단속에 역점을 두는 부당내부거래의 87%가 금융거래인데 계좌 추적권이 2월 4일 끝납니다. 계좌 추적을 못하면 조사가 안 됩니다.

▶안종범=규제 혁파만큼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이 없습니다. 1백70여개의 경쟁 제한적 제도 가운데 한두 개에는 핵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각오로 규제 혁파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김형기=대량 생산 경제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환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 제도도 주주(stockholder)자본주의로 가느냐 이해관계자(stakeholder)자본주의로 가느냐 논란이 많습니다. 공정위는 이런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김대환=변화하는 상황에 대비한 다양한 형태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보다 경쟁적이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만들려면 제한적으로 사법권을 공정위에 부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다 보니 공정위가 게임에서 밀리는 것이지요.

▶노성태=기업을 조사하고 벌할 때는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장규=80년대 초반 공정위가 만들어졌을 때, 과장 광고 단속이 그 최초의 업무였습니다. 이후 하도급 문제를 거쳐 지금은 출자 총액까지 손대고 있습니다. 건국 이후 이렇게 빨리 성장한 정부 기관이 없습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작은 정의에 치중해온 측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경제 전체의 효율을 생각하는 '큰 정의'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강철규=끝날 때쯤 되니까 공정위를 칭찬하는 말이 나오네요(웃음). 세계 공정거래위원장 모임에 가면 우리 나라의 위상이 G7(선진 7개국)쯤 됩니다. 전문성 부족이란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현실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행=김영욱 전문기자
정리=김종윤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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