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이용되는 조문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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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에 조문사절을 보내자고 거듭 주장하는 이부영의원등 일부 야당의원들의 저의를 짐작키 어렵다.며칠전 그런 발언이 거센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고 국민감정이 용납하지 않음을 잘 알았을텐데 왜 또 같은 소리를 되풀이해 파문을 확대하는가.
조문을 둘러싸고 우리 내부의 이런 논란이 일자 북한은 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남의 조문단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상중이라 경황이 없을 것이라는 외부세계의 관측과는 달리 북은 남의 동향을 민감하게 살피고 이쪽의 분열요인을 확대할 기회를 빈틈없이 이용하는 것이다.이제 조문논자들은 그 봐라,북도 환영한다니 사절을 보내자고 나올 작정인가.
조문논자들은 언필칭 모처럼의 남북정상회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조문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곰곰 뜯어보면 조문논이 나올 때마다 다수의 반대론자들은 김일성과 북한정권의 과거 행적과 악항을 근거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다시 말해 이들이 조문을 주장할 때마다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에 전혀 도움이 안될 김과 북의 악항이 대량 소개되는데 그것을 알고도 조문논을 자꾸 들먹이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조문논자들은 주변 4강이 앞다퉈 조의를 표하고 사절단을 보낼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주도권을 상실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참으로 어이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조문단 을 1등으로보내면 영향력이 1등이 된다는 얘기인가.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조문에 달려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일본만 해도 조문을 않기로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판이다.
또 조문논자들은 일왕이 죽었을 때 조문단이 가지 않았느냐,모택동이 죽었을 때도 닉슨과 포드가 갔다는 예을 들고 있는데 이런 전례가 모두 지금의 우리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한일간은 불만스러운대로 과거 청산과 수교를 거쳐 우방관계가 됐고,미중관계도 모사망 당시 수교가 된 후였다.
조문논자들이 마치 조문을 해야 정상회담이 열리고 하지 않으면안 열릴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이고,조문을 반대하면 정상회담도 반대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나중에 김영삼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날 때 첫인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는데 그런 걱정을 미리부터 할 필요는 없다.김대통령이 그때 가서 우리의 생각과 논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까닭이 뭐겠는가. 우리는 요즘같이 민감한 시기에 조문논 같은 문제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더이상 논쟁이 필요없는 문제다.국회의원쯤 되는 지도급 인사라면 자기들의 주장이 미칠 파급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국회의원도 조문을 주장하는데 우리가 가만 있을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고,한술 더 뜨고 나올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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