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소르본 대학 '기업 모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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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 팡테옹 소르본대(파리 1대학)에서는 '시대별 파리의 발전상'이라는 주제의 학생 논문 발표회가 열렸다. 프랑스 대학에서 논문 발표는 흔히 있지만 눈에 띄는 건 거액의 장학금이었다. 학교 측은 입상자 4명에게 2만 유로(약 2600만원)를 전달했다. BNP 파리바와 수에즈 등 민간 기업이 이를 후원했다. 이들 기업은 논문집과 홍보물 등에 기업 로고를 넣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내놓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추진한 대학 개혁 관련법이 1일 발효됐다. 핵심은 각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프랑스 대학의 상징 격인 소르본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파리 소르본(파리 4대학)은 조만간 아랍에미리트 대학에서 63만 유로(약 8억1900만원)를 받는다. 소르본 두바이 분교 학생 등록금이다. 이 분교는 소르본과 결연한 아랍에미리트 대학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말 두바이에 설립됐다. 소르본은 첫 학기에 분교생을 170명만 받았지만 이번부터는 정원을 350명으로 늘렸다. 적지 않은 수입 때문이다. 분교생이 등록금으로 연간 1만2000유로(약 1560만원)를 내면 이 가운데 1800유로(약 234만원)를 파리 소르본 본교가 수익금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파리의 본교생이 내는 등록금(170유로 안팎)의 10배가 넘는다.

소르본은 또 수에즈.로레알.SFR 등 대기업과 손을 잡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과 공동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학생에게 쓰는 돈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소규모로 운영 중인 3개 소르본 대학(파리 1.3.4대학)의 기념품 판매도 본격화한다. 현재는 학교 구내에서 볼펜을 파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내년 초 4대학 앞에 전문 매장이 문을 연다.

지난해까지 파리 소르본 대학생 한 명에게 배정되는 학교 예산은 도서관.강의실.학교식당 운영비 등을 모두 합해 연간 3300유로(약 429만원). 프랑스 유치원생에게 돌아가는 예산보다도 적다. 등록금이 공짜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의 보조금에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선 대학 재정의 77%를 국가가 맡고 있다. 기업 기부금은 전체의 5% 선이다.

사르코지 정부는 앞으로는 대학 총장이 최고경영자(CEO)가 돼 대학을 꾸려 나가라고 주문하고 있다. 각기 대학의 특성에 맞는 기업과 손을 잡아 기업은 인재에게 투자하고 대학은 재정 확보와 동시에 전문성을 키우라는 것이다.

지방에서도 대학의 기업화가 활발하다. 투르 대학은 몇몇 제약회사로부터 학내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세르지-퐁투아즈 대학은 미국 기업인 코카콜라와 산학협동을 논의 중이다. 7월에는 클로드 베르나르 리옹 1대학 내에 산학 공동 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 .

파리=전진배 특파원

◆소르본=68학생혁명 이후 평준화 조치에 따라 파리의 대학에는 이름 대신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68년 이전에 있던 소르본은 현재의 파리 4대학이다. 소르본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학계의 요구에 따라 1, 3, 4 대학이 각각 팡테옹 소르본, 누벨 소르본, 파리 소르본으로 불리고 있다. 3개의 소르본이 있는 셈이지만 프랑스에서 소르본이라고 하면 보통 4대학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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