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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스페셜올림픽 수영 출전 자폐 장애인 고유진 선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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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12면

고유진 선수가 2007 상하이 스페셜올림픽 여자 배영 100m 4위 시상대에 올라 활짝 웃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고 선수가 시합 전 경기장에서 연습하는 모습.

3일 오후 2시10분 상하이 푸둥수영장. 고유진 선수가 여자 배영 100m 예선전 출발선에서 몸을 웅크린 채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삑!” 여덟 명의 선수가 동시에 몸을 날린다. 고 선수의 팔이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2분37초62. 7등이다. 고 선수가 경기장 밖으로 후다닥 나온다.

“꼴찌에서 둘째… 그래도 내가 1등”

“유진이 일곱등 했어요! 내일(결선)은 1등 할 거예요!”

스페셜올림픽은 참가자 모두가 결선에 출전할 수 있다. 예선은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을 고르기 위한 절차다. 고 선수는 하위 그룹에서 결선을 치르게 된다.

고 선수는 자폐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이번 올림픽에 함께 참가한 다른 선수들도 처음엔 “선생님, 유진이 이상해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손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끊임없이 손을 앞뒤로 뒤집거나, 계속 혼자 노래를 부른다. 손톱을 자주 깨물어 엄지손톱 밑에 하얗게 살이 드러나 있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의 질문을 반복해서 말한다.

“유진이, 기분 좋아요?”라고 물었더니 “유진이, 기분…좋아, 요!”하고 따라한다. “유진이, 기분 나빠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유진이, 기분…나빠, 요!”하고 응수한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말투 같다.

그런데 “유진이, 수영 싫어요?”라는 질문엔 “유진이, 수영…좋아,요!”하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큰소리로 말한다. 조영희(30·여·이화여대 특수체육 박사과정) 여자팀 수영코치가 “저렇게 질문했던 내용과 다르게 대답할 때가 진짜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고 선수는 잘 웃지 않는다. 웃어보라고 하자 “스마일”하면서 어색하게 입 끝만 올린다. 하지만 대표팀은 고 선수 덕분에 웃음이 끊일 날이 없다. 같은 수영팀 상미(18)도, 재연(17)이도 “유진이 언니는 너무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 선수는 모든 일을 후다닥 해치운다. 양치질도 1초 만에 끝내고 옷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갈아입는다. 무슨 노래든 제목과 가수만 대면 바로 나오는 ‘인간 노래방’이기도 하다. 서울패밀리의 ‘지난날’부터 동방신기의 ‘풍선’까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버스로 이동할 땐 마이크를 독점하면서 무슨 노래든 4배속으로 부른다. 수영을 할 때도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노래하는 박자에 맞춰 헤엄치는 속도도 달라지기 때문에 코치들은 고 선수가 경기 때는 빠른 노래를 불러주길 바란다.

“유진이, 오늘은 시합하면서 무슨 노래 불렀어요?”

양팔을 힘차게 저으며 “하나 둘, 하나 둘, 이겨라, 이겨라” 외친다. 좋아하는 노래 대신 구호를 외치면서 헤엄칠 만큼 이기고 싶었나 보다. 어제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할 때도 “유진이 수영 열심히 해서 1등 할 거예, 요!” 했단다.

고 선수는 2004년 특수학교인 한국육영학교에서 초·중·고 과정을 마친 뒤 서울 송파구 마라복지센터에서 물건을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 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운동을 그만두지만 고 선수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 송미의(50)씨 덕분이다. 송씨는 고 선수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수영장에 데리고 다닌다.

고 선수는 처음 1년을 배우고서도 헤엄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진도가 맞지 않으니 일반 학생들과 같은 반에서 배울 수 없었다. 고 선수를 가르칠 수 있는 개인 지도 강사를 겨우 만났다 싶으면 곧 그만두는 일이 반복됐다.

“몇 명을 바꿨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열 명? 훨씬 더 되죠….”

송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0년은 가르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장애가 있더라도 뭐든지 스스로 즐길 만큼은 익힐 수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겨울마다 스키를 가르쳤다. 고 선수는 2005년 나가노 겨울 스페셜올림픽 알파인 스키 부문 최상위 그룹에서 동메달을 땄다. 플루트도 곧잘 불어 서울 송파구 하트복지관의 관악기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하다.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운 것이다. 송씨는 “특별히 유진이에게 돈을 더 쓰진 않았다. 장애가 없는 아이들도 다 학원에 다니지 않느냐. 네 살 아래인 유진이 남동생과 똑같이 키웠다”고 말한다.

고 선수는 정해진 일정이 바뀌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조 코치는 “평소 50m 경기장에서 연습했는데, 오늘 시합은 25m 경기장이라서 유진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주최 측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으로 경기 일정이 당일에야 나오고 그나마 바뀌는 일이 잦아 더욱 힘들었다. 고 선수는 한 달 일정을 다 외고 시계 세 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스케줄대로 생활해야만 안정된다. 중국에 입국하던 날도 엄마가 적어준 대로 ‘산책-사진 찍기’를 안 했다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방문 앞 복도를 서너 번 왔다 갔다 하고 현관에서 사진을 찍고서야 비로소 잠들었다.

어젯밤엔 참치캔 뚜껑에 그만 손을 깊게 벴다. 화가 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울면서 창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주최 측인 중국에서 선수들의 숙소 바깥 출입을 통제해 병원에 못 가고 의무실에서 1회용 밴드를 붙였다. 계속 물에 들락거리는 바람에 상처가 아직도 벌어져 있다. 그래도 아프단 말 한마디 없이 “수영 못해?” 라며 혹여 시합에 못 나갈까 그 걱정뿐이다.

결선날인 4일 오후 2시30분. 고 선수가 6번 레인에 섰다. “삑!” 2분41초04. 다섯 명 중 4등이다. 잠시 뒤 경기장 옆에서 조촐한 시상식이 열렸다. 표정 없던 고 선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시상대에서 메달 대신 하늘색 리본을 걸고도 계속 만세를 부른다. 자원봉사자들이 달래서 겨우 데리고 내려왔다.

“유진이, 몇 등 했어요?” “유진이, 4등 했어, 요!” 그러더니 다시 양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외친다. “유진이, 1등 했어, 요!”

맞다. 유진이가 1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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