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문화/지식 대중화 길잡이/이와나미사 등 월4백종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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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명작에서 포르노까지 총망라
일본은 새로운 지식이나 이론이 세계적으로 보아도 가장 빨리 대중화되는 나라에 속한다.서구의 새 이론은 순식간에 일본사회에서 상식이 되어버린다.이는 물론 외래문화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에는 문고라는 지 극히 대중적인 출판매체의 공헌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포켓 북 사이즈보다 더 작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있을 정도인 일본의 문고판은 가격도 보통 단행본의 3분의1 내지 4분의1수준에 지나지않아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 문고문화의 독특성은 단순히 작고 값이 싸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문고하면 우리는 흔히 고리타분한 고전·명작류를 떠올리게 된다.일본의 문고문화는 이런 분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의 서적들이 문고판으로 나와 있다는 점에서 가위 세계적이라 할만하다.
아주 높은 수준의 이론서에서부터 저질 포르노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고급 독자들에게나 알려진 미셸 푸코·발터 벤야민을 문고판으로 읽을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외에는 없다.
양적으로도 매월 평균 4백종 정도가 발간되고 있어 부족함이 없다.따라서 대중의 지적 수준의 향상이란 측면에서 일본의 문고문화는 엄청난 기여를 했고,이것이 결국 전후 경제성장 원인이 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일본의 문고를 대표하는 존재로 제일 먼저 꼽는 것은 역시 이와나미(암파)문고다.이와나미사의 창업주인 이와나미 시게오가 1927년에 독일의 레클람문고를 본떠 만든 이와나미문고는 고전적인 명저들의 뛰어난 번역판을 내놓아 명성을 떨쳤다 .일본인들 스스로 세계적인 명역으로 자랑하는 요네카와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고바야시의 랭보 번역등을 내놓았을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주요저작을 모두 발간하기도 했다.일본의 웬만한 지식인들치고 지적 형성기에 이와나미문고를 거치지않은 사 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러한 문고판의 융성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인들의 지적 생산성을 하락시킨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일본지식인들이 외국이론의 정리나 요약에는 능하지만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이론의 창출에 이르지 못하는 것도 문고문화가 만들어낸 지적 평준화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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