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극단 그린씨어터 "살찐 소파에 대한 日記"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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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대륙엔 자본주의의 공장굴뚝이 급속도로 들어서는등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80년대 이념투쟁으로 날을 밝히고 마르크스.레닌을 얘기하며 밤을 지새우던 운동권 전사들은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80년대 서울대 연극반 출신들이 모여 만든 극단 그린씨어터의창단 공연작『살찐 소파에 대한 日記』는 목표잃은 전사의 삶을 그리고 있다(동숭아트센터 소극장.8월7일까지).
막이 오르면「나」는 어머니의 품처럼 안락한 살찐 소파에 그저앉아있다.「나」는 70~80년대식 격렬한 삶을 잃어버린채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90년대 지식인의 얼굴이다.「나」는「나」의 분신「그」와「그녀」사이에서 방황한다.문민 정부를 맞아 지난 시대 지식인의 현재 삶을 조명해 봄으로써 이 극은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의미를 갖는다.코미디.섹스물 일색인 연극가엔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랄만 하다.선문답과도 같은 난해하고 현란한 대사는 관객들에게 재미보다는 사고하는 고통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폭발하듯 분출되는 배우들의 에너지는 극의 진행내내 객석을긴장시킨다.
『살찐 소파…』는 연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데도 인색치 않다.주목받는 아티스트 오경화씨가 무대 주위에 설치한 8대의 모니터를 통해 펼쳐내는 환상은 비디오아트와 연극의 화려한 만남을 보여준다.서울대 음대 이건용교수의 음악은 관능적이 면서도 주술적인 힘을 드러낸다.신예 무대미술가들의 깔끔한 무대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극은 너무 많은 볼거리를 나열해 극이 산만해졌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음악은 배우들의 대사를 침범하기 일쑤고 비디오의 화려한 영상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잡아먹는다.게다가기본적인 발성.대사전달도 제대로 안되는 배우에게 타 이틀롤을 맡긴 것은 이 극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때 납득이 가지않는 미스캐스팅으로 보인다.
〈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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