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미국/“북 붕괴방지”공감대조성/외교·안보전문기자 합동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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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흡수통일 불원” 적극적 표명/북/개방맞춰 「주사」 수정할수도/미/“안정희망” 대규모 원조 시사
지난 반세기동안 지속된 동북아 냉전구조가 드디어 해체기를 맞고 있다.
이 냉전구조에서 가장 차게 얼어붙어 있던 북한이 본격적인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어 한반도의 진정한 해빙 가능성이 기대된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대감만큼 혼미한 북한정국은 우리에게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를 조명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계적인 냉전구조가 와해된 지금 북한은 회생불가능한 경제 때문에 개방을 추진해야 할 입장에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김일성 유일체제와 이념으로 인해 선뜻 개방을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있다.김정일은 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김일성 주체사상을 개방과 체제유지에 적합한 이념으로 수정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북한은 이와 병행,남북정상회담을 이용해 새로운 지도자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한편 북―미회담을 통해서는 외교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려 해왔다.북한체제의 불안요인 가중으로 한반도의 안정화가 급선무로 떠오르긴 했지만 내년 5월의 핵확산금지조약(NPT)최종평가회의때까지는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입장이다.
따라서 북―미 3단계회담이 중단된 지금 미국은 북한의 지도부가 개혁적이면서 확고한 권력기반을 가진 세력이기를 희망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할것이며 그 일환으로 북한정권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핵문제와 관련,경제적 지원을 약속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은 체제안정과 경제회생을 위해 미국의 지원이 적극 필요하며 미국에 대해 안전보장과 경제지원및 관계개선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북한과 미국의 이해가 상응해 협상의 관계가 유지및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의 최대목표는 전쟁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면서 점진적 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 있다.급속한 북한사회 개방은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으로 인한 북한체제의 붕괴는 두가지 방법으로 진행될 수 있다.우선 김정일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하더라도 김일성 주체사상이 내면화된 북한주민의 의식구조보다 빠른 속도로 개방정책이 추진될 경우 국민의 체제불신으로 사회동요가 일어 날 수 있다.역으로 주민의식이 정부의 개방정책 속도를 훨씬 앞질러 갈 경우 동구공산주의의 붕괴를 가져온 국민의 집단적 반발이 분출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정부는 북한에 대해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새 정권에 대해 무리한 개방정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표명하고,경우에 따라 경제지원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한 북한측이 정상회담 추진을 다시 제의해올 경우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하고,김정일체제를 인정함으로써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체제붕괴를 방지하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양국은 정책목표의 실천과정에서 다소 견해차를 보일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를 우려하고 있으며,특히 미국 조야의 매파들에 의한 클린턴 정부의 정책변화를 방지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또 미국은 한국에 대해 한미공조체제 강화 분위기 조성과 동시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및 고가무기체계 구매를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한및 미국 정부는 현재의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불확실성의 제거는 기본적으로 급격한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며,현상유지가 중요하다는데에 관계당사국들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태진전의 결정적 고리는 김정일 정권의 체제관리 능력이지만 서로의 정책목표와 의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대화채널의 확보및 유지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우리 군의 확고한 대비태세가 긴요하다고 하겠다.〈김민석·김성진·조홍 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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