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책갈피] 나폴레옹도 아내에게 어리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편지로 읽는 세계사

와타히키 히로시 외 지음
김현영 옮김
디오네, 568쪽
1만8000원

사적인 글, 편지를 통해 세계 역사를 촘촘하게 엮은 책이다. 편지의 발신자는 고대 이집트의 군주부터 현대의 환경운동가까지 동서고금을 아우른다. 책에 수록된 편지는 모두 123통. 각각의 편지는 당시의 신분제도와 생활상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기원전 1900년대 후반 고대 이집트의 서기(왕을 보필하는 관료) 케티가 자기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하나만 봐도 그렇다. ‘서기가 되어라. … 너는 뱀이 그 수확의 절반을 빼앗아 가고, 하마가 그 나머지를 완전히 먹어치운 후에 수확세의 등록에 직면해야만 하는 농부의 처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느냐? … 서기는 모든 사람의 지배자란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는 세금을 내는 일이 없단다.’ 자식이 편안한 직업을 얻기 바라는 부모의 심정까지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이 살수대첩 직전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편지는 역사를 움직인 편지의 하나로 기록된다. ‘그대의 신통한 계책이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듯하고, 그대의 기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모두 아는 듯하네 …’ 편지를 읽은 우중문은 자기를 칭찬한 데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살수(청천강)를 건너 수나라로 돌아가려다 수많은 병졸을 수장시킨 패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중문이 그 편지를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편지로 해석,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살수를 건너 도망치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우중문의 군대를 살수로 이끈 건 을지문덕의 편지 아니겠는가.)

 편지를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프랑스 왕비 앙트와네트가 처형당하기 몇 시간 전 시누이에게 쓴 편지에는 남은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또 영웅 나폴레옹은 아내 조세핀에게 ‘당신은 당신의 편지가 당신 남편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몇 줄 휘갈겨 쓴 편지조차 보내려 한지 않는단 말이야’라는 어리광 섞인 편지를 보냈다.

역사를 사건이 아닌 사람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일까. 책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술술 읽힌다. 저자 4명 모두 일본의 중·고교 역사교사들인 만큼 설명이 꼼꼼하고 친절해 중·고생들이 읽기도 무난하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