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62. 관광 명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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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필자(右)가 1985년 강영훈 전 총리와 재외 공관장 일행에게 MRI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KIST 이순재 영상담당 제공]

KAIST에서 세계 최첨단 MRI를 개발하고,금성사와 함께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자 내 연구실은 국내 과학계의 ‘관광 명소’가 됐다. 그 때까지 세계와 경쟁하면서 그런 첨단 의료장비를 국산화한 사례가 없었다. 더구나 초기에는 단돈 몇억원과 나와 대학원생 10여명의 힘으로 그런 장비를 이론에서부터 실제 장비까지 개발한 것은 그 전례를 찾을 수가 없었다.내 연구 성과는 대통령에게도 보고돼 칭찬을 받았고 또 82년 처음 MRI 영상을 얻었다는 뉴스는 모 일간지 1면 기사로 나온 적도 있었다.

과기처는 외국에서 귀빈이 오면 KAIST를 보여줬고,그중에서도 우리 연구실은 단골 방문지가 됐다. 독일 BMFT 라이세후벤 장관,인도네시아 하비비 과학성장관,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청 스노루나쿨 청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관료 중에는 어떻게 이런 것을 개발했으며, 정부로부터 얼마를 지원받았는지를 꼬치꼬치 물었다.자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개발해 볼 수 있을지를 타진해 보는 것 같았다. 국내 국회의원 등 정치권에서도 자주 방문했다.

과기처에서도 내 연구실처럼 우리의 과학력을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던 터였다. 이러저런 이유로 내 연구실은 외국 관리나 국내 고위층의 방문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방문객들로 붐빈 것은 내가 KAIST를 그만둘 때인 1997년까지 약 15년 동안 지속됐다.

방문객들은 우리 연구실을 들러보고 감탄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장비를 개발하고,상품화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해 하는 듯했다. 나 역시 그들 앞에서 우리의 연구 성과를 소개할 때는 개발 성공에 대한 기쁨이 배가 됐다. 컴퓨터 모니터의 대여섯 개에는 우리가 개발한 MRI가 찍은 머리에서부터 가슴 부위 등의 영상이 비춰지고,나는 그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우리의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MRI로 인체를 찍으면 초기에는 그 데이터를 이용해 인체 영상을 만드는 데는 몇 시간이 걸렸다. 그 영상들은 모두 나나 대학원생들의 몸을 찍은 것들이었다.

방문객들이 많아질수록 연구에 지장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한 것을 더 많이 알려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생들도 처음에는 방문객들에게 대해 거부감이 있었으나 점차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척척 알아서 안내하고, 내가 없으면 선임 대학원생이 나서 브리핑을 했다.

이정오·전학제·김성진·이태섭 장관 등 그 당시 과기처 장관들은 우리 연구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오 전 장관의 경우 내가 1k가우스 짜리 MRI를 개발하자 나를 불러 필요한 것이 없는지, 어떤 것을 지원해줘하는지 등을 물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약 5년 가까이 과기처 장관을 지냈으며,최형섭 전 장관에 이어 두번째 장수한 과기처 장관이기도 하다.

과기처도 내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아마도 그 당시 KAIST 교수 중 과기처에서 단일 과제로 가장 많은 연구비를 내가 받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 초전도 2.0 테슬러(2만 가우스) MRI 를 개발했을 때 더욱 많은 지원을 받았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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