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후 34시간 “까맣게 몰랐다”/정부,방송보도후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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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첨단자랑하는 미정보망도 놓친듯/북,시침떼고 판문점 접촉·대미회담 응해
김일성의 죽음은 34시간동안 묻혀있었다.9일 낮12시 북한중앙방송이 그의 사망(8일 오전2시)을 발표할때까지 우리 정부는 깜깜하게 몰랐다.
김영삼대통령은 낮 12시5분쯤 여성정책심의위원들과 청와대 오찬자리에서 북한방송을 인용한 KBS의 긴급보도를 보고받고 알았다.대북 감청에 관해 나름의 「노하우」와 첨단장비를 갖고 있는 미국의 정보망도 김일성의 죽음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평양의 권부는 김의 시체부검(병리해부검사)까지 끝냈다.북한은 그러면서 기존의 대외 업무는 예정대로 진행했다.죽은지 8시간뒤인 8일 오전10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경호실무자 접촉에서도 어떤 징후도 파악되지 않았다.바로 김일성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총국소속 관계자(최춘 호위총국부장)가 실무대표로 나왔지만 평양 정상회담의 경호문제를 담담하게 논의하고 끝냈다.
역시 그날 미국은 제네바에서 북한과 3단계회담에 들어갔다.갈루치국무부차관보가 강석주북한대표와 악수하고 회담을 시작한 것은김의 사망 14시간 뒤다.김의 사망 당일 벌어진 판문점과 제네바의 장면은 공산국가만이 연출하는 의도적인 미스 터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자리에 나온 북한 실무자들도 김의 죽음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정부는 물론 미국의 정보수집체계에 모종의 허점이 있지 않은가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정신을 집중해 김의 죽음이라는 기습에 허를 찔린 격이 됐다.8일 남북경호실무자 접촉에서는 북측이 성의를 보여 일찍 끝났으며 우리측은 정상회담을 향한 좋은 징조라고 까지 평가했다.
한 북한문제 관계자는 『8일 북한호위총국 관계자들이 생각보다 성의있게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김의 죽음에 긴급 연락을 받고 서둘러 일을 끝내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사망징후를 사전에 전혀 몰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복잡한 얘기가 있는데 얘기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우리 정부는 사전에 미국으로부터 어떤 정보도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미국은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통신전자 감청부대를 통해 대북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며 워싱턴 국가안보국(NSA)의 지시를 직접 받고있다.오산의 미군부대는 86년 11월 김일성사망설 해프닝의 진원지.
NSA는 전자통신정보수집·감청을 주요임무로 하고 있으며 오산부대는 평양 심장부의 통신을 감청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와관련,한 군사소식통은 『평양의 권부가 김의 사망뒤 초동관리를 극비에 완벽하게 처리해 우리 정부는 물론 첨단통신위성등 감청장비를 갖고 있는 미국도 놓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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