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열전>설문조사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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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某생활용품회사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기에 앞서 소비자를 상대로 그 제품을 사겠는가의 여부를 묻는 자체설문조사를 했는데,「사겠다」가 무려 80%에 달한 적이 있었다.당연히 회사측은 고무됐고 그래서 생산설비도 늘리고 대대적인 판촉을 벌였으나 결과는 대참패였다.
『사겠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갔나』를 따졌더니 표면적으로는 너무 높게 설정된 가격,더 깊숙이는 애당초 잘못된조사방법에 원인이 있었다.우선 설문조사를 거부했던 사람이 40%에 달했었다.게다가 응답자의 설문결과는 사겠다 40%,사지않겠다 10%,잘모르겠다가 50%로 나왔는데도,조사진은 거두절미하고 「사겠다」와 「안사겠다」의 비율 40대10을 80대20으로 늘려 계산했던 것이다.
그회사에 별 호감이 없거나 바빠서,또는 이미 경쟁사제품을 사용하고 있어서 응답자체를 거부한 비율은 전혀 감안되지 않았던 셈이다. 아울러 설문이 너무 어렵거나 복잡해 판단이 불가능했거나,조사나온 회사사람들에게 안산다고 답하기가 뭐해서 대충 모른다고 응답했던 사람들의 속마음도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객들의 직장에 우편설문을 보냈던 某증권사는 응답거부자들이 90%에 달해 조사자체가 수포로 돌아간 것은 물론 엄청난 항의까지 받았다.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회사에 알려 지는 것을 꺼린다는 속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는 이같이 모른다거나 응답을 않는 집단을 DK그룹(Don't Know)과 NR그룹(Non Responce)으로 부르는데 최근 학계에선 오랫동안 조사의 최대함정이자 골칫거리가돼온 이들 그룹에 대해 연구를 집중시키고 있다.
이분법적인 응답항목을 늘려 DK그룹의 비율을 최소화하거나 DK,NR그룹에서 소집단을 뽑아 밀착조사를 함으로써 그 결과에 가중치를 두어 전체평균을 내고 『당신주위사람들이 이렇게 할 때어떤 생각을 갖는가』라는 간접질문으로 속뜻을 알 아내는 방법등이 그것이다.그러나 「中庸의 德」,「모르는게 藥」의 효력때문인지 우리나라 응답자들이 DK와 NR를 택하는 비율은 어느나라보다도 높다.그러면서도 조사집단의 크기나 신뢰도,의도적이었던 설문등에 관계없이 최종 %만 나오면 이 를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李孝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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