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성악설/불교 평등사상/천도교 시천주/동양 민주주의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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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시아 전통문화속 민주주의 탐색/아·태재단 학술세미나/한국 무속,천·지·인 조화로 지상천국 실현 목표/“내세강조·법제 결여… 민주주의와 거리” 반론도
『아시아의 전통문화속에 민주주의의 뿌리가 있는가』.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 김대중)이 네번째로 마련한 학술세미나가 7일 오후 2시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강당수용능력을 훨씬 넘는 6백여명이 참가하는 바람에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강당 외부에 별도로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들어야 했다.
유교·불교·천도교를 대표해 발표에 나선 이기동 성균관대교수와 한상범 동국대교수,권승오 천도교 종학대학원교수등은 물론 가톨릭신자인 박일영 효성여대교수도 「한국 무속전통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속에서 민주주의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유교는 특히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사상에서,불교는 자비·평등의 사상에서,천도교는 인간이 신과 같다는 「시천주」사상에서,무속의 경우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질서와 조화를 통한 지상천국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서구 민주주의사상의 씨앗이 보인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곧이어 열린 토론과정에서 강력한반론에 부닥쳤다.
먼저 김만규인하대교수는 「종교사상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수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보통인간과는 거리가 먼 석가와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개체사상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은 개인으로 하여금 현세에 안주,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신복룡건국대교수도 종교의 궁극적 관심이 신과 인간의 관계며 민주주의는 현실인 반면 종교적 지향은 내세주의라는 점,종교가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불교의 경우 무소유의 원칙이 자본주의의 생산력 향상에 역행한다는 점등을 들어 종교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찾는다는것은 견강부회라고 반박했다.
신교수는 특히 동학이전의 한국사상이 불모지나 다름없었다고 한권승오교수의 주장에 강력히 반발했다.수운 최제우가 「인내천」사상을 창조했다는 권교수의 주장과 관련,그는 『수운은 그 시대를 흐르는 사상을 집대성한데 지나지 않는다』며 권교수의 논문은 학문적이기보다는 포교문의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한국무속전통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살핀 박일영교수의 주제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한상진서울대교수는 무속전통에서 강조된 공동생활은 동양의 어느 민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이라고 전제,무속신앙이 아무리 훌륭한 특성을 지녔더라도 개인 권리의 제도화·법제화를 결여하고 있어 민주주의와 연결시키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교수는 그러나 『무속신앙의 다신교적인 사고방식이 조화의 추구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인권리의 극대화에 따른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데는 하나의 대안으로 연구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개진해 관심을 끌었다.〈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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