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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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23)옆으로 다가서는 화순에게서 술냄새가 풍겨왔다.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하며 길남이 조금 비켜섰다.좀전에 길남이 앉았던 그 목재더미에 걸터앉으며 화순은 바다를 내다보았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그녀를 길남은 바라본다.목이 참 긴 여자네.희고 긴 그녀의 목을 보면서 길남은 그런 생각을 한다.
『앉어.』 옆에 서 있는 길남을 보며 화순이 말했다.
『하늘 무너질까 봐 그렇게 서 있는 거야?앉어.』 길남은 그러나 앉지 않았다.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서 있었다.순간순간 떨어져 가던 해는 이제 바닷속으로 가라앉고연한 잿빛 구름이 해가 떨어져간 수평선에 테를 이루며 깔려 있었다.하늘을 물들이고 있던 붉은 빛 도 많이 흐려지고 그 위로조금씩 어둠이 칠을 하듯 덧발리워지고 있었다.
혼잣말을 하듯 화순이 말했다.
『나 오늘 술 먹었다.대낮부터 먹었다.』 『좋은 팔자는 혼자차고 앉으셨네요.』 『얘 말하는 것 좀 보라지.낮에 술 처먹는년은 오죽해서 먹겠니.』 『낮에 두더지처럼 탄 캐는 놈도 있답니다.』 『탄은 뭐 너 혼자 캔다든.잘났네 하고 내세울 것도 없다.여기 사람 다들 그러면서 살아.』 술기운에 화순이 말싸움을 걸듯이 내뱉았다.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길남이 싱긋 웃었다. 『늘 이렇게 술을 마셔요?』 『어려운 시동생 하나 생겼네.
네가 나 술 사 준 적 있니? 그 쓰잘데 없는 소리 좀 그만해라.마시라고 있는 술인데.』 『그래서 다 마셔서 없애시려고요.
누님이?』 누님이라는 말에 화순이 흠칫 놀라듯 고개를 돌렸다.
취기가 가시는 듯 그녀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말 그렇게 막 하는 거 아니다.나 너같은 동생 둔일 없다.
』 그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길남이 옆자리에 와 앉으며 말했다. 『대낮이 아니라 아침부터라면 어떻겠어요.드실 수 있으면 좋은 거지요.누가 뭐라겠어요.그런데,이렇게 나다니시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그게 걱정이네요.』 『남이 누란다고 똥 누어질까.하라고 해서 될 일이 따로 있지.내 술은 아무도 못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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