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의교향악울릴것인가>8.남북정상회담-이산가족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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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平壤정상회담이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바다로 이어질 것인가.
南北韓이 정상회담에 합의한뒤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회와 이북5도민회등 실향민단체에 「고향방문단 명단을 접수하느냐」는 문의가 쇄도중이고 일각에선 이번에도 또 속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산가족들의 「기대半 회의半」의 심정은 그간의 체험 탓이다. 金泳三대통령이 4일 이북5도민회 주요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산가족 재회및 교류문제를 주의제로 다룰 것임을 밝힌 것이나 金日成주석이 정상회담의 메신저 지미 카터 前美대통령에게 『70세이상의 고령자 수백명의 고향방문을 우선적으로 성 사시킬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의 상봉이 가장 가시적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인 8월15일 또는 추석때 노부모 고향방문단의 상호교환과 서신교환등 이산가족 교류를 성사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같은 방안들이 실천에 옮겨진다면 신뢰회복.화해도모에 긍정적으로 작용할게 분명하다.
분단 50여년동안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이 85년9월20일부터 3박4일간 단 한차례밖에 없었음은 분단과 통한의 세월을 그대로웅변한다.
단 한번의 고향방문은 그해 5월말 서울에서 열린 8차 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이「8.15를 기한 이산가족 고향방문및 예술공연단교환방문」에 동의함으로써 가능했다.
남북간에 적십자회담 본회담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가운데 89년 본회담개최를 위한 판문점 실무대표접촉에서 89년 12월의「제2차 고향방문단및 예술공연단 교환」에 합의했지만 합의에 그쳤다. 北의 혁명가극『꽃파는 처녀』『피바다』서울공연 주장과 남측의 거부로 성사 문턱에서 좌절되었었다.
인적교류가 민족화해의 첫 걸음이지만 자칫 政治性이 개입되면 좌초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뒤 北은 92년9월의 8차 고위급회담에서 李仁模씨의 송환이이뤄지면 노부모 이산가족교향방문과 판문점면회소 설치에 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이산가족문제를 둘러싼 그간의 역정은 우리측의 절박성을 잘 아는 북측이 성의를 보이다가도 마치 없었던 일로 돌리는게 다반사였음을 보여준다.
南北韓은 92년에 발효된 기본합의서(18조)에서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서신거래▲왕래.상봉.방문▲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기타 인도적문제 대책강구등에 합의했음을 다시 상기하면 희망은 있다.
南北의 양정상은 민족의 숙원사업이 무엇인지를 잘안다.
그러나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접근태도에는 여전히 간격이 있다.
南이「인도주의적」접근으로 일관해온 반면 北은 통일이 실현돼야인도주의가 해결되며 따라서 정치군사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입장이다.
北은 월남자를 北韓의「민주개혁」을 피해 도망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반동분자」로 규정해온 만큼 월남자가족의 재결합은 체제나 정권에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北은 또 南이 이산가족 방문을 통해 북한사회에 자유화바람을 불어 넣으려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北이 이문제를 자유로운 인적교류와 결부시키려할경우엔 다시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판문점면회소설치,노부모 이산가족의 고향방문 정례화에의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5년12월이후 중단된 적십자회담 11차 본회담이나 실무접촉이재개될지 이산가족들은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
〈兪英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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