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3단계 회담/“최후 핵 담판” 일단 낙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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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규명 늦출수도” 미 유연/폐연료봉 처리문제가 관건
8일부터 제네바에서 시작되는 북―미 3단계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전망이 밝은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이같은 낙관적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회담 당사자들의 언동에서 느껴진다.
우선 강석주 북한측 수석대표의 제네바 도착 일성은 여느 때와 달리 대화와 협상,그리고 회담의 성공을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북한측으로서도 사실상 마지막 대미협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번 회담만은 어떻게든 성사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미국으로부터 바라고 있는「선물」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받아내든지,아니면 최소한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뚜렷이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일성주석과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의 면담에 이은 북한측의 전향적 태도변화로 다시 어느정도 협상의 칼자루를 쥐게된 미국측의 입장도 한결 유연해진 것으로 감지된다.
특히 미국측의 한 고위대표가 7일『북한핵의 현재와 미래의 투명성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과거문제를 부문에 부칠 수는 없지만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룰 수도 있다』고 강조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모처럼 조성된「대화판」을 깨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입장이 일단 회담성공 쪽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데다 그간의 무수한 접촉으로 상대방의 입장과 이에 대한 자신들의 카드를 서로 훤히 알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번 회담이 의외로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도 조 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이같은 가능성은 회담에 앞서 한 미국측 대표가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와 수교등 핵심의제를 회담 시작과 함께 바로 협상테이블에 올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조기타결을 여러차례 강조한데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회담 직전 미국대표가 북한측이 주장하는 일괄타결안이나 미국측의 점진적 해결방안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이의 「중간점」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행과정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에도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
이는 미국이 북한핵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북한측의 성의표시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선물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는등 국제사회에서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경우 정치·경제적 관계개선을 한 꺼번에 해줄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될 경우 이번 주말 양측의 기본입장 개진이 끝나고 이에 대한 본국정부와의 협의를 마친 뒤 오는 12일께 회담이 속개되면 일단 이번 회담의 성패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실무문제들에 대한 협의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다음주말께 양측의「기브 앤드 테이크」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물론 이 시점까지 완전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번 회담과 함께 현재 북핵해결을 위한 다른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회담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상대인 만큼 북한이 과거의 핵문제,즉 5㎿원자로의 폐연료봉 처리문제나 2개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수용문제등에서 종래의 주장을 고집할 경우 이번 회담이 교착되거나 실패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회담 자체가 북한의 최고결정권자인 김주석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능했던데다 남북정상회담도 눈앞에 두고 있는만큼 북한도 무리한 생떼나 시간벌기 작전은 쓰지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기대다.<제네바=유재식·고대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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