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도 변해야(8·2보선 선거개혁될까:4·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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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사빙자한 매표흥정도 과열·혼탁부채질/다급해진 후보 악용하는 브로커도 막아야
14대 총선을 치르고 선관위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불법·탈법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정당과 후보의 불법타락이 46.9%로 1위를 차지했다.
2위가 유권자들의 금품향응요구로 15.3%.표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불법선거 만들기에 나란히 선두였다.
지난번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치러지던 중부지역 C시. 한 노인정에서 경로잔치를 열었다.초청 유지 명단에는 4명의 시의원 출마후보들도 들어있었다.
못본체 할 수 없어 오후에 노인정에 들렀던 후보 P씨는 실색을 했다.경로당 벽에 찬조금 내용이라며 「A모씨 10만원」「B모씨 20만원」「C모씨 5만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표의 경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P씨의 말이다.
선관위는 8·2보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부정선거 감시에 들어갔다.선관위가 역점을 두고 있는 활동중 하나가 각종 계모임·향우회·동창회·동호인모임을 빙자한 선거운동이다.
선관위는 이를위해 감시위원들에게 해당구역과 인근의 각종 대형음식점·유원지·노인정·관광회사등을 수시로 살피고 야유회·체육대회·관광모임등의 성격을 알아보라고 지시해 놓고 있다.
이번 보선에서 선관위가 잠정 집계한 선거비용 제한액은 대구수성갑 5천4백만원,경주시 5천5백만원,영월―평창 6천1백만원. 새 통합선거법에 따른 계산으로 나온 액수다.
후보들은 이 돈만으로 「30(억)당 20(억)낙」「운동원일당 10만원」「합동연설회 청중동원비 1억」등이 협정가격이다시피 해온 선거판을 뛰어야 한다.
그래서 아직 현장은 조용하지만 누구도 이같은 평온이 끝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다.
지지를 부탁하고 돌아서는 후보의 뒤통수에 『맨입이냐』는 볼멘소리를 해대는 유권자,마음 급한 후보 사정을 외면한채 자금을 풀때를 기다리며 꼼짝않는 운동원,『향우회·야유회를 하려는데 지원해줄 수 있느냐』는 손벌림,심지어 철새처럼 끼어 드는 선거전문 브로커의 매표흥정까지.
보선현장의 이같은 장면들은 「망국병 치유」를 내걸고 만든,돈 못쓰게한 새 선거법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중앙당이 보선승패가 정국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집착하면 이들 조그마한 3개의 선거구는 순식간에 뜨거워지게 돼있다.
후보들도 공명을 다짐하고 선의의 경쟁을 부르짖지만 중반이후 우열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것이다.후보들이 부담스런 새 규칙을 던져버리면 선거판은 바로 정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번 보선이 과거의 선거들처럼 과열되고 혼탁해질 경우 그것이 갖는 부정적 의미는 심각하다.선거풍토의 개혁시도가 시작부터 실패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임좌순 선관위 상임위원은 『새선거법 발효이후 사전선거운동 성격의 선심성 행사나 금품제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이제 문제는 유권자의 의식개혁』이라고 말했다.〈김교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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