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인의, 노인에 의한 연극2편 성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노인 학대 내용을 담은 연극이 4일 강원지방경찰청 강당에서 공연됐다. 연극 경험이 없는 60~70대 배우들은 노인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열정으로 연습했고, 이날 공연에서도 열연해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작가 오세기씨 제공]

#장면 1 남편이 사망한 후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할머니. 아들과 딸 등 자식을 두었지만 어느 누구도 모시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직장도 없는 막내 아들은 술을 먹고 행패까지 부린다. 할머니는 지켜보는 사람 없이 쓰러진다.

 #장면 2 혼자 된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 손녀와 살고 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재산은 물론 아버지의 연금까지 가로채고, 며느리는 할머니를 항상 방에 들어가 있으라며 구박한다. 이 모습을 보고 자란 손녀는 며느리가 했던 대로 어머니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요구한다.

 4일 오후 강원지방경찰청 무대에 올린 연극 『어머니의 노래』와 『연지의 인형』이다. 강원도노인학대예방센터가 노인 학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노인의 권익과 복지를 높이기 위해 기획한 연극이다. 이날 공연에는 300여 석의 좌석이 모자라 서서 관람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공연을 본 관객들은 내용에 공감하는 것과 함께 노인 배우들의 열연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연극은 전문 극단 관계자가 노인 학대 사례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지만 노인 학대가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노인 배우들의 열정으로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출연 배우는 연지 역과 행인 두 명을 빼고는 모두 60~70대 노인. 초· 중· 고등학교 교사와 교장, 일반 공무원 출신의 노인학대예방센터 시니어 상담원 18명으로 이전까지 무대에 서 본 경험은 전혀 없다.

 노인학대 문제를 홍보하는 데는 연극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센터의 제안에 동참해 이들이 연습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그러나 연극을 처음 접한 상태라 연극의 기초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더위가 한창인 8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대사를 외우고 동작을 익히는 등 작품 연습에 매달렸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져 대사를 외우기 어려운데다 몸 동작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노래에서 막내 아들 역을 맡은 송희춘(66)씨는 “ 이 나이에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노인학대 문제를 알리고, 연극이라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4일 오전 마지막 리허설에서도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 극이 매끄럽지 않았다. 움직이는 시기를 놓치거나 동선(動線)도 약간 이상했다. 그러나 본 공연에서는 약간의 문제가 생겼지만 배우들의 경륜으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넘어갔다. 연극을 본 조규연(41·춘천시 후평동)씨는 “내용도 좋았지만 평생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인들의 열정적인 연기 때문인지 마음의 울림이 컸다”고 말했다. 연극은 2개의 극에 이어 신체적 학대, 언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재정적 학대, 방임 등 노인학대의 유형을 내레이션과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배우로 나섰던 노인들은 공연에 앞서 노인학대 유형을 마임 형태의 행위예술로 표현한 포퍼먼스를 선보였다. 노인학대예방센터는 노인학대 사진과 효(孝) 문구를 전시하고, 노인 상대로 우울증 검사도 해줬다. 또 한림대 고령친화전문인력육성사업단은 특수장비를 활용해 시각, 촉각, 청각, 교통, 보행 등 노인의 생애체험 행사와 함께 숟가락 포크, 노인용 접시, 노인용 목용 의자, 요실금 팬티, 노인용 워커 등 실버 용품을 전시했다.

 노인학대예방센터 이은하 소장은 “노인들이 여름 내 땀 흘려 만든 연극을 강릉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며, 2008년부터는 도내 고등학교에서도 교육용으로 연극 일부를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