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정권인정에 자존심 굽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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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월터 먼데일 주일美대사는 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日本총리를 방문한 자리에서『미국은 새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한다』고 말했다.먼데일 대사는 그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부총리겸 외상을 만나『미국은 신정권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인다 .유보조건 없이 현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안심하시오』라는 말까지 했다.
美국무부가 쓰는 「정통성」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政變등 이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 정권이 親美的이며 민주적인가 여부를 지켜본뒤 붙여주는 말이다.미국 주도하의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이 그정권을 수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무성 소식통은 이를 의식,『먼데일 대사가 쓴「정통성」이란 말은 정권을 승인한다는 특별한 의미가 아니라 미국이 지금까지와같은 형태로 미일협력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정권이란 뜻에 지나지않는다』고 밝혔다.
이가라시 고조(五十嵐廣三)관방장관도 기자회견을 통해『인정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어감상 문제도 있고 기분문제도 있어 깜짝 놀랐으나 충분히 안심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부연설명했다.
주일美대사가 일본의 신정권에 대해「정통성」이란 말을 쓴 것은극히 이례적이다.
이는 미국내 일부에서 무라야마 정권탄생으로 장래 미일관계를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먼데일 대사의 발언은 지나친 것같다.쿠데타등에 의한 정변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이 아니고 법적 절차에 따라 아무런 하자없이 정권이 교체된 우방에 대해,그것도 경제대국이요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일본에 대해 그같은 말을썼으니 말이다.
일본인들로서는 다분히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日언론들도 의도적이라 할만큼 이렇다할 동요없이 넘어갔다.아사히(朝日)신문만이 1면에 4단기사로 논평없이 사실보도만 했을뿐다른 신문들은 1단으로 쓰거나 아예 무시했다.
이를 보면서 일본인들의 실리주의가 또 다시 절감됐다.
그들의「本心」은『자존심이 뭐 그리 중요한가.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므로 미국은 자기방식으로 인정하고 미일관계만 좋아지면 그만 아니냐』는 것이 아닐까.지극히 일본인다운 처신과함께 日本위에 드리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입김이 피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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