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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맛] 터키 사람들의 '밥' 케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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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곗바늘이 오후 7시30분을 넘어 주위가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빼곡히 광장을 메웠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던 낮 풍경과는 딴판이다.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과 식사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종일 굶은 사람들답지 않게 모두 흥겨운 얼굴이다. 라마단은 이들에게 축제이기도 하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경험했던 하나미(벚꽃놀이) 광경이 떠올랐다.

 터키인들이 즐겨 찾는 숯불구이 고기요리 ‘케밥’. 음식점에서 즐기기도 하지만 길거리에서 들고 다니며 먹기도 한다. 가격은 한 개에 2~4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1500~3000원 수준이다. “맛도 맛이지만 값싸고 간편해서 즐겨 먹어요.” 아흐메트 광장에서 만난 메흐메트 카박치(25)의 말이다.

<터키 이스탄불> 글·사진= 유지상 기자

중국·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밥상
 아직 생소하지만 터키 요리는 중국·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에 꼽힌다.
 푸드 칼럼리스트 백지원씨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리상의 이점과 좋은 기후 조건에서 얻어지는 풍부한 식재료, 거기에 오스만제국의 궁중 문화가 만나 터키 음식의 꽃을 피웠다”고 설명했다. 제국은 중앙아시아 대평원에서 유럽의 빈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터키 음식문화에 내륙아시아의 유목 음식, 서부 아시아의 농경 음식,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궁중음식이 섞여 있는 연유다.

 “아나톨리아는 물론 지중해 일대를 장악한 오스만제국 왕의 생활은 호화찬란했지요. 왕의 밥상에 똑같은 요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규정까지 있었어요. 요리사들은 매일 새로운 메뉴를 만들려 혼신의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지요.” 백씨가 덧붙였다.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프 궁전에 가면 제국 시절의 방대한 음식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궁전 오른쪽에 거대한 부엌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요리사가 무려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이 왕의 밥상을 비롯해 하루 1만 명분의 음식을 만들었단다. 현재는 과거에 쓰던 주방 도구와 도자기 등 진귀한 물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터키인들의 주식은 빵이다. 작은 바게트처럼 생긴 에크멕이라고 부르는 빵에 꿀 또는 잼을 발라 먹거나, 밀가루 반죽 피데에 야채와 고기 등 갖가지 재료를 싸서 먹는다. 우리처럼 쌀로 밥을 지어 먹는 사람들도 있다. 요리는 자극적인 소스나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고 재료의 원래 맛을 살린다.
 

병사들의 전투식량 

“터키 음식의 중심엔 케밥이 있다.” 터키에서 만난 요리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사원 주변에 가장 많은 음식점이 케밥집이다. 입구에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꼬챙이에 끼워 수직으로 세우고 빙빙 돌려가며 굽는 가게가 네댓 집 건너 하나꼴이다. 서울의 청담동격인 이스탄불의 ‘탁심’ 지역에도 케밥집이 흔하다. 현대적인 장비에 세련된 장비를 갖춘 레스토랑으로 변신했을 뿐이다.

 케밥은 불에 구운 고기 요리를 뜻한다. 여행 칼럼리스트 조주청씨는 “터키 민족의 조상은 광활한 중앙아시아를 누비던 유목민”이라며 “이동생활에 익숙한 이들에게 적합한 빠르고 간편한 요리가 케밥”이라고 설명했다. 고깃덩어리를 칼에 꽂아 야영지 모닥불에 구워먹던 병사들의 전투식량이기도 했다. 케밥은 재료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이슬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가 주 재료다.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화덕에서 세운 채로 조금씩 익히기 때문에 기름이 쪽 빠져 담백하다. 익은 부분을 칼로 저며 채소와 함께 밀가루전병에 싸서 먹는 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되네르 케밥이다. 고기를 꼬치에 끼워 만든 쉬시 케밥도 있다. 일본의 야키도리나 우리의 꼬치구이를 닮은 요리다. 아다나 케밥은 지중해변의 아다나 지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매콤하게 양념해 만든다.

 
항아리째 굽고, 고등어 구워 넣고

 항아리에 넣어 오븐에서 조리한 항아리 케밥도 있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명물이다. 양고기나 쇠고기를 토마토·가지·감자·양송이·고추·올리브 등과 함께 양념으로 버무려 항아리에 담는다. 밀봉해 통째로 오븐에 구운 뒤 손님들 앞에서 그 항아리를 깬다. 쇠고기로 만든 케밥은 우리네 갈비찜에 버금가는 맛이다. 일행 중 한 명이 국물로 밥을 비벼먹으며 ‘고향의 맛’이라고 평한다. 이따금 씹히는 항아리 파편은 조심할 점.

 에부라노스 레스토랑의 야자르 아스란 주방장은 “카파도키아의 음식은 동쪽의 매운 맛과 남쪽의 올리브 맛을 잘 살려 만든다”며 “그 대표적인 요리가 항아리 케밥인데 한국 관광객들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케밥이라고 모두 육고기로만 만들지는 않는다. 이스탄불의 갈라타 대교 아래에는 고등어(발륵) 케밥집이 몰려 있다. 해질녘이면 굽는 냄새로 금방 찾을 수 있다. 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굽고 에크멕을 갈라 그 안에 토마토·양파·채소 등과 함께 넣어 만든다. 값은 2리라(1500원 정도).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려 한 입 베어무니 비린 맛이 가득하다. 터키 여행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지만 공감할 수준은 아니다. 동행자가 많다면 하나만 사서 가볍게 맛을 보는 게 좋겠다. 자칫 토마토 국물이 고등어 기름과 함께 흘러나와 옷을 버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TIP

터키는 먹거리뿐 아니라 고대 유적지와 대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곳이다. 관광일 경우엔 무비자로 90일간 체류 가능하다. 터키항공과 대한항공이 각각 주 3회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2시간. 유럽이나 동남아를 경유해서 입국할 수도 있다. 시간은 우리보다 7시간 느리지만 서머타임이 있어 3월 마지막 주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6시간 차이가 난다. 화폐 단위는 예니터키리라(YTL)로 1YTL는 770원 정도. 우리나라에서는 환전이 안되므로 유로(0.59 EUR)나 달러(0.83 USD)를 준비한다. 물가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터키 음식

해물 요리 적고, 돼지고기 안 써

 세계 3대 음식이라고 하지만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해산물 요리가 적어 다채로운 요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도 잘 골라 먹으면 매력 만점이다.

■메제=정찬을 시작할 때 먹는 음식. 스페인의 ‘타파스’와 비슷하다. 토마토·오이 샐러드, 가지 구이, 올리브유로 튀긴 요리 등 무척 다양하다. 조금씩 덜어 입맛을 돋우는 수준으로 먹는다.

■초르바=수프를 말한다. 다양한 초르바가 있는데 ‘세브제 초르바’는 야채수프다.

■돌마=속을 채운 요리를 포괄적으로 말한다. 피망이나 가지의 속을 파내고 잘게 썬 고기나 채소로 채운다. ‘미드예 돌마’는 홍합 껍데기 속에 볶음밥을 넣은 것.

■뷔렉=얇은 반죽 안에 치즈·채소·고기 등을 넣어 층으로 만든다.

■만트=이탈리아 만두 ‘라비올리’와 비슷한데 엄지손톱만 하다. 요구르트 소스와 함께 낸다.

■필라브=기름이 들어간 밥인데 버터 넣고 비빈 밥에 가깝다.

■쾨프테=동그랑땡처럼 고기를 갈아 구운 요리. 쉬시 케밥처럼 꼬치에 끼워 내기도 한다.

■라흐마준=이탈리아 피자와 비슷한데 반죽이 얇다.

■시미트=길거리에서 많이 파는 도너츠 모양의 빵.

■무할레비=우유와 쌀가루로 만든 푸딩 스타일의 음식.

■로쿰=터키의 전통 젤리. 젤리보다 떡에 가까운 촉감이다. 장미향이나 견과류 등이 들어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케말 파샤 타틀르스=터키 독립의 아버지라고 하는 케말 파샤의 이름을 딴 디저트. 설탕 덩어리를 입에 넣은 것처럼 지독하게 달다. 쓴 터키 커피랑 어울린다.

■바클라바=페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단맛의 디저트.

■차이=홍차. 터키 사람들이 수시로 마시며 편안하게 즐긴다.

■아이란=식사 때 마시는 묽은 요구르트. 시큼하며 짠맛이 나는데 마실수록 끌리는 매력이 있다.

■돈두르마=쫀득쫀득한 맛이 특징인 터키 아이스크림.

■라크=물에 타서 마시는 45도 술. 투명한 술에 물이 섞이면 백색으로 변하는데 향이 짙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에 있는 터키 맛집

■파샤(www.pashakebab.com) = ‘서울 속의 터키’라고 할 정도로 터키 분위기가 물씬난다. 현지에서 온 조리사들이 숯불 오븐에서 케밥을 구워낸다. 평일 점심엔 수프·샐러드·차를 함께 주는 런치스페셜(7500~8500원)이 실속 메뉴. 지하철 강남역 5번 출구 인근. 02-593-8484.  
 
■메르하바(www.merhaba.co.kr) = ‘안녕’이란 뜻의 터키 말을 상호로 내건 곳.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이태원 방향으로 양옥집을 고친 하얀 건물에 들어있다. 양갈비 케밥 2만9000원, 아다나 케밥 1만5000원, 모듬 피데 1만4000원. 02-794-3182

■살람(www.turkeysalam.com) = 서울 이태원 이슬람 사원 옆에 있는 터키음식 레스토랑. 규모는 작고 허름하지만 맛은 알차다. 주로 양고기를 쓰는데 양 냄새가 덜하다. 케밥과 함께 수프·샐러드 등 10여 가지 메뉴가 나오는 살람 정식은 1만8000원. 02-793-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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