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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뛴다] 최고령 '고래 포수' 김해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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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래잡이가 다시 시작되는 걸 보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상업 포경 재개를 바라는 고래 포수 출신 김해진(金海辰.76.울산시 장생포)씨는 요즘도 고래 잡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는 생존해 있는 고래 포수 출신 중 최고령이다. 장생포가 고향인 그는 고향이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다시 흥청대는 그날을 기다리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고래를 잡을 수 있었을 때 장생포는 울산에서 가장 부자동네였지, 그러나 지금은 시내버스도 안들어와."

일본서 해운학교를 나와 배를 타면 징병에 끌려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 포경선을 타면서 고래와 인연을 맺은 그는 민간인 '고래 박사'로 통한다. 일본 과학자도 찾아와 자문을 구할 정도이다.

그는 37년(1947~85년)간 고래잡이 배를 탔고 27년간 포수로 활약했다.

"목선(木船)은 고래 곁에 조용히 다가가 잡았고 철선(鐵船)은 고래를 놀라게 한 뒤 추격해 힘이 빠지면 잡았지."

1백톤급 철선은 고래를 발견하면 다가가면서 소음전파를 보내 도망하게 한다. 시속 35 노트 정도로 달아나는 고래를 철선이 13노트로 30분 정도 추격, 힘이 빠진 고래 곁 10m 정도 접근해 포를 발사해 잡는다. 한번 발견한 고래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물속에 들어간 고래가 어디쯤 나올지 정확히 맞추는 포수로도 유명했다.

"밍크 고래는 3~7분, 참고래는 10~15분 물속에서 견딜 수 있지. 숨이 짧은 고래는 온순하고,숨이 긴 고래는 난폭한 것도 특징이여."

그러나 그는 "귀신고래는 물 속에 들어가면 어디서 나올지 맞추기 어렵다. 워낙 영리해 사람의 눈을 피하는 귀신 같은 재주가 있어 '귀신고래'이름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립수산과학원이 이번 겨울철 동해에서 귀신고래 회유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데 대해 "귀신 고래가 동해에 보일 때는 날씨가 매우 추웠어. 요즘은 바닷물이 따뜻해져 귀신고래가 안 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1천 마리 이상의 고래를 잡았다.

"고래 잡이는 6월이 성어기여. 참고래는 주로 7, 8월에 잡혔지만 70년대 말부터 사라져 버렸지. 동해에서 잡힌 고래는 주로 밍크고래고, 돌고래는 겨울철에 잡혔어."

그는 1972년엔 괌도 주변 등 적도 해역에까지 가서 고래를 잡기도 했다.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를 추격하다 새끼를 먼저 잡았는데 어미가 도망가지 않고 새끼 곁에 다가와 함께 잡히는 걸 보면서 혹등고래의 진한 모정을 느꼈어."

그는 이 일을 고래잡이 37년 동안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 최고의 포수로 평가됐던 그는 고래잡이 일지를 만들어 보관해 왔다.

"기록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의 일지엔 고래 잡은 해역, 마리 수, 크기, 종류는 물론 날씨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일지 덕분에 하루에 가장 많은 8마리의 고래를 잡은 날(1972년 6월 13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잡을 고래 중 가장 큰 것은 72자(21.6m).

그는 이 일지를 지난해 국립수산과학원에 제공, 우리나라 해역의 고래회유와 자원관리 등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이 자료 제공 등의 공로로 지난해 말 해양수산부 장관 포상을 받았다.

그는 국립수산과학원이 1999년부터 동해.남해.서해에서 10여 차례 실시한 고래자원조사에 탐경원(探鯨員)으로 참여했다. 올 봄에 계획된 서해의 고래자원조사에도 참여하기로 돼 있다.

그는 "고래잡이가 중단된지 20년 동안 한국 주변에 회유하는 고래가 상업포경을 해도 자원이 줄지 않은 정도로 풍부해졌다"며 "상업 포경이 빨리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래고기는 꼬리 살이 맛있지. 혹등고래 고기 맛은 일품이었어.돌고래는 살이 타박하고 상괭이는 기름이 많아 맛이 없어."

고래 맛을 잘 아는 김 씨는 그러나 "고래고기가 비싸 사먹지 않는다"며 웃었다.

강진권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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