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엔니오 모리코네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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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니, 눈물을 흘렸어도 좋을 공연이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엑스터시 오브 골드’에 맞춰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오른쪽은 소프라노 수잔나 리가치. [사진제공=서울음반]

지난 2, 3일 이틀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첫 내한공연. 거장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9000여 관객의 심장은 공연 전부터 박동치고 있었다. 79세라는 고령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모리코네는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섬세했다. 그는 노련하게 80인조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00인조 합창단을 지휘하며 객석을 감동과 전율의 세계로 이끌었다.

‘언터처블’ 주제가로 시작한 공연은 5개의 테마 아래 관객의 감성을 장악해갔다. 노신사는 자신의 존재감 만으로도 마에스트로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우라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선율은 체육관 공연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지휘봉과 함께 들썩이던 그의 좁은 어깨. 평생 창작의 고통이 짓눌렀을 그 어깨였다. 지금도 매일 아침 눈 뜨면 곡 작업을 한다는 그는 창작의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감동과 희열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명품이 됐다. 영상 없이도 홀로 빛나는 그의 음악은 영화음악의 장르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엑스터시 오브 골드’에서는 소프라노 수잔나 리가치가 합창단의 장엄한 화음과 함께 천상의 목소리를 뽐냈다. 귀에 익은 ‘황야의 무법자’ 부터 술렁이던 객석은 ‘가브리엘의 오보에’ 등 ‘미션’ 삽입곡으로 달아올랐다. 그토록 기다렸던 ‘시네마 천국’이 첫번째 앙코르곡으로 연주되자 객석에서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옆자리의 노신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관객 모두는 이미 영화 속 주인공의 감성으로 돌아가 있었다.

‘히어즈 투 유’로 세 번의 앙코르를 마친 그는 명강의를 마친 교수처럼 악보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의 퇴장 뒤에도 기립 박수는 오랫 동안 이어졌다. 관객들은 공연장을 떠나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생애에 다시 한번 이 거장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박수를 받을 때마다 왼팔을 지지대에 기댄 채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던 거장의 모습을 한국 팬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 관객에게서 열정을 느끼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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