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보다 편한' 부산 등대콜 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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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콜 택시 운전사 박삼병씨(56)가 2일 부산시 연제구에서 호출한 승객의 집 앞에서 직접 택시 문을 열어주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2일 오전 부산시 사하구 신익아파트 앞. '등대 콜'을 부른 천민재(45.대구시 달서구 침산동)씨는 오렌지색 제복을 입은 50대의 운전기사가 90도로 허리 굽혀 "어서 오십시오"하고 인사하자 어리둥절했다. 미리 문이 열려져 있는 택시를 탄 천씨의 놀라움은 계속됐다. 운전기사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은 뒤 "차 온도는 괜찮으세요" "좋아하는 음악 있으세요"라고 질문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30여 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한 김씨는 운전기사가 현금영수증을 끊어주자 다시 한번 놀랐다. 천씨는 "택시를 타고 이렇게 기분 좋기는 처음"이라며 활짝 웃었다.

지난 4월 출범한 부산의 개인 콜택시 등대콜이 택시문화를 확 바꾸고 있다. 엄선된 개인택시 운전기사 2500명이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민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차별화가 성공 핵심=부산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지하철 확충과 자가용 증가에 따라 택시 하루 승객이 크게 줄었다. 1996년 127만3000명이었으나 지난해는 2006년 94만8000명으로 25%나 감소했다. 3만5000여 운전기사의 월평균 수입은 150만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했다. 그래서 올 4월 부산시와 개인택시 운전기사들이 혁명적 서비스를 도입했다. 등대콜의 탄생이다.

부산시와 개인택시조합은 개인택시 운전기사 2만5000명 중 61세를 넘지 않고 법규 위반 경력이 없으며 경력이 5년 이상 된 성실한 모범 운전기사 2500명을 선발했다. 일본의 친절택시 대명사 'MK 택시'의 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24명은 일본 교토 MK택시 본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불성실한 운전사에 대해 회원 아웃제도 도입했다.

전국 최초로 위성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 무전을 치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배차했다. 콜이 접수되면 이용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운전기사에게 메시지가 전달돼 거의 5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다. 기존 콜택시가 채택하고 있는 무전기 방식(TRS)이 거리와 관계없이 가장 먼저 키를 누르는 운전기사에게 연결되는 배차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한 셈이다.

어린 자녀나 여성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가족 휴대전화에 등대콜의 위치와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안심 귀가 서비스'도 9월 시행했다.

최근 밤 늦게 부산 온천장에서 양산까지 등대콜을 이용한 정재숙(34.여)씨는 "택시가 집 앞 골목길에 도착한 뒤 어두운 골목길을 헤드라이트로 비춰져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운전기사 월수입 30만원 늘어=등대콜 도입 당시 승객이 택시를 부른 건수는 하루 200여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친절한 서비스가 알려지면서 8월에 콜 수가 1만 건을 돌파했다. 지금은 하루 평균 1만1000건의 전화가 걸려온다.

승객이 느니 운전기사의 수입도 월평균 30만원 증가했다. 유정희(53) 기사는 "친절 서비스를 하니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늘고, 손님이 많아지니 수입도 늘어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부산=강진권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등대콜=부산시가 내비게이션과 카드결제 시스템 등 장비 설치에 12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개인택시조합은 운전기사 교육과 관리를 맡고 있다. 출범 당시 12명이던 상담원이 40명으로 늘었는데도 손이 부족한 실정이다. 10월부터 운전사들이 '콜 성공' 수수료를 1명당 100원씩 내기로 했다. 호출 비용은 없으며 요금은 일반택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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