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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창>길버트 그레이프-스무살청년의 가족사랑.자아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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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길버트 그레이프』는 놓치기 아까운 영화다.
과실은 적고-앞선 베이붐세대가 나눠가졌기 때문에-경쟁과 책임은 무겁게 지워진 X세대의 좌절과 고민에 대한 위무곡이자 人倫,즉 가족애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힘주지 않고,그러나 설득력 있게 주장한 秀作이기 때문이다.게다가 고향을 등지 는 범세계적「脫鄕의 시대」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바탕에 짙게 깔린 자연의포용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갓 스물을 넘긴 길버트(조니 뎁)는 아이오와州 조그만 시골에서 네명의 식구를 부양하며 살아간다.문제는 가족들이 전적으로 그에게 의지해 지탱된다는 것이다.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살이후 스트레스성 비만으로 집밖에도 나올 수 없는 비만환자 고,남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정신박약아로 잠시도 눈을 뗄 수없는 사고뭉치다.그뿐이랴,34세의 노처녀 누나와 사춘기의 반항적인 막내여동생까지 여기에 편승한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길버트지만 그에겐 초롱초롱한 눈빛과 건강한 신체,성실한 마음자세가 있는만큼 이에 상응한 꿈도 있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도 있다.하지만 그의 어깨에 얹힌 의무는 갈수록 무겁게 짓누른다.
영화는 어니의 열여덟번째 생일파티의 전후사정을 축으로 진행된다.어니가 물탱크에 올라가 말썽을 피우던 어느날 한번도 보지못한 아가씨가 나타난다.트레일러를 끌고 여행중인 베키(줄리엣 루이스)는 차가 고장나 강가에 머무르고 있었다.이제 부터 라세 할스트럼감독은 석양이 물드는 평원에 두 사람을 배치시킴으로써 길버트를 억눌러왔던 자아와 닫힌 공간이 열리도록 사건을 꾸민다.어니의 경찰서 감금,베키와 어머니의 상면이 이뤄지더니 이윽고어머니의 죽음에 이른다.집을 불살라버 림으로써 붙박이 삶을 청산하는 길버트는 평원에서 해후하는 베키의 차에 동승한다.
『개같은 내인생』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했던 스웨덴 출신의할스트럼은 이 영화로 다시한번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다.영화정서와 조화를 이룬 그윽한 영상,일상적이면서도 정갈한 대사,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결집시켜 모범이 될만한 한편 의 휴먼드라마를 낳았다.특유의 유럽적 감수성에다 할리우드의 구성법.유머를 가미한 것이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가위손』에서 만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인상깊게 그렸던 길버트역의 조니 뎁과 全美비평가위원회로부터 최고연기상을 받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케이프피어』『남편과 아내들』에서 청순하면서도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줄리엣 루이스는 이제 겨우 스무살로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별임을 이 영화로 다시한번 입증했다.
〈李揆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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