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평양 고집 한때 먹구름-진땀흘린 예비접촉 막전막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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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의 10여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협상은전민족이 숨을 죽이고 지켜본 역사의 긴박한 현장이었다.
이날 오전10시에 시작된 협상은 오후8시25분의 극적인 정상회담 개최 합의서 서명에 이르기까지 전체회담,두차례의 수석대표단독회담,한차례의 실무대표접촉등 진통의 계속이었고 한편의 드라마였다. 오전 1시간30분에 걸친 쌍방 대표단의 첫 예비접촉은쌍방의 입장차이가 드러낸 탐색전이었다.
南은 정상회담을 7월중에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갖자면서 상호주의만 관철되면 「평양 先개최」도 수용할 뜻을 밝혔다.
北이 의제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은 청신호였으나 8월15일 평양개최를 고집한 대목에선 잠시 먹구름이 끼었다.
정상회담 성사의 희비곡선이 얼갓린 하루였다.
우리측은 일단 10여분 정회할 것을 제안했고 북측도 받아들였다. 오전 11시40분부터 오후1시까지 진행된 李洪九 남측수석대표와 金容淳 북측단장의 단독회담은 일단 이날 접촉을 성공으로이끄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7월25일 평양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자는데까지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그러나 北이 2차회담의 시기와 장소는 7월25일 평양에서 쌍방의 정상이 개최장소.시기를 정하면 된다고 맞서 난항에 빠졌다.
北은 또「회담을 깨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 것」을 합의서 조항에 넣자고 주장,결국 오전에 결론을 낼수 없었다.
식사를 위해 오후1시에 정회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오후 12시40분쯤 회담장 밖과 서울의 남북회담사무국등에서 정상회담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터져나와 모든 문제가타결됐다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돌았으나 정회에 들어가자 다시 합의서 채택은 물건너갔고 예비접촉이 한두차례 더 열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판문점 北지역의 통일각으로 돌아간 북측대표단중 安炳洙대표만 평화의 집으로 돌아온 것은 오후2시35분쯤.
이때부터 남측의 尹汝雋대표와 북측의 安대표가 만나 비공개 실무대표접촉에 들어가 오전회의의 토의및 합의내용을 정리하고 마지막 절충을 벌였다.
4시10분까지 1시간40분에 걸친 이 접촉에서 양측은 팽팽히맞서왔던 남북한 정상의 상호교환방문과 회담분위기 조성등의 조건들을 절충,「2차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논의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북측지역 통일각에 가있던 金북측단장등 대표단이 4시58분 평화의 집으로 돌아왔고 곧이어 오후5시에 남북수석대표 단독회담이열렸다. 마지막으로 이견을 절충하는 이 자리에서 5시50분쯤 합의서에 극적으로 합의했다.그러나 합의서작성.서명까지는 다시 2시간30분이나 걸려 새 문제가 발생한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합의서 작성의 지체는 북측이 합의서 서명란에 誤記했기 때문인 것으로 뒤에 밝혀졌다.
이날의 긴박했던 마라톤협상을 전세계 언론이 지켜보았으며 美CNN방송은 시간대별로 상황진전을 보도하는등 큰 관심을 모았다.
北도 상황의 중대성을 인식한듯 평소 10여명의 취재기자에서 25명으로 늘렸다.
北기자들이 某신문의 당일 칼럼을 문제삼으면서 北측 대표단에 전달,한때 분위기가 경직되기도 하는등 막후의 해프닝도 적지않았다. 이날 막전의 협상 못지않게 막후에서 金泳三대통령과 金日成주석이 회담장모습의 TV생중계를 보며 수시로 대표들에게 『수용하라』『거부하라』등의 내리는등 사실상 회담을 진두지휘해 이목을끌었다. TV중계는 남북한의 사전합의에 따라 KBS중계팀 20명이 상주,회담장내부의 모습을 청와대뿐만 아니라 광케이블로 북측지역 통일각에 송출해 가능했다.
역사적인 정상회담 합의를 위해 남북정상은 대리인들을 예비접촉에 보내 막후에서 간접회담의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것이 이번 성사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兪英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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